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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2월 15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6.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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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오늘의 기념일

  • 국가 구제의 날 (캐나다)
    1965년 2월 15일,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잎 국기(The Maple Leaf)'가 의사당 계양대에서 처음으로 올려진 날을 기념합니다. 이전까지 캐나다는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레드 엔사인'을 국기로 사용해 왔으나, 캐나다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레스터 피어슨 총리의 주도로 국기 개정이 추진되었습니다. 수천 개의 공모작 중 선정된 현재의 디자인은 조지 스탠리 교수의 제안을 바탕으로 완성되었으며, 양옆의 빨간색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중앙의 하얀색은 캐나다의 영토를, 그리고 11개의 끝을 가진 단풍잎은 캐나다의 자연과 국민을 상징합니다. 1996년 장 크레티앵 총리에 의해 공식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매년 이날에는 캐나다 전역에서 국기 게양식과 다문화 축제가 열리며 국가적 자부심과 화합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세르비아 국경일 (세르비아)
    세르비아의 현대 국가 건설을 기념하는 가장 상징적인 명절로, '국가 존립의 날'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날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이 겹치는데, 첫 번째는 1804년 오스만 제국의 억압적인 통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제1차 세르비아 봉기'의 시작입니다. 두 번째는 1835년 세르비아 최초의 근대 헌법이자 당시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법전 중 하나로 꼽히는 '스레텐예 헌법'이 채택된 날입니다. 정교회 축일인 주님 봉헌 축일과 겹치는 이 날은 종교적 경건함과 애국심이 결합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집니다. 베오그라드를 비롯한 주요 거점에서는 군사 행진과 국가 훈장 수여식이 거행되며, 국민들은 외세의 지배를 극복하고 민주적 헌법 체계를 세우려 했던 조상들의 희생정신을 기립니다. 이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주권 수호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는 국가적 근간이 됩니다.
  • 전쟁 기념일 (싱가포르)
    1942년 2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일본군에게 무조건 항복하며 싱가포르가 함락된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일본 점령기 동안 싱가포르 국민들은 '숙칭 학살'을 비롯한 가혹한 탄압을 겪었으며, 정부는 이러한 아픈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추모 행사를 엽니다. 비치 로드의 민간인 희생자 기념탑 앞에서는 장엄한 추모식이 거행되며, 전국의 학교에서는 '토탈 디펜스 데이' 교육을 통해 국가 방위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특히 오후에는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 전 국민이 잠시 일상을 멈추고 묵념에 참여하는데, 이는 단순히 과거를 슬퍼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한 국력과 결속력이 없으면 언제든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엄중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평화와 안전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성찰의 날입니다.
  • 아프가니스탄 철군 기념일 (러시아)
    1989년 2월 15일, 10년 동안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마치고 마지막 소련군 부대가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우정의 다리'를 건너 철수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해외 분쟁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한 전사 추모의 날'로도 명명하여 기념합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수많은 젊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소련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나, 철군은 그 고통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매년 이날 러시아 전역의 참전 용사 기념비 앞에는 카네이션이 헌화되며, 생존한 참전 용사들과 유가족들이 모여 전우애를 다집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국가의 부름을 받고 헌신한 이들의 명예를 드높이는 행사를 마련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도모합니다. 이 날은 러시아 군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교훈과 숭고한 보훈 정신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기념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세계 아동암의 날 (국제)
    아동암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높이고 환아와 그 가족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2002년 국제아동암협회(CCI)가 제정했습니다. 매년 2월 15일,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아동암의 조기 진단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이 동시에 전개됩니다. 아동암은 성인 암과 달리 예방적 검진이 어렵지만, 조기에 발견하여 표준화된 치료를 받을 경우 완치율이 80% 이상에 달할 정도로 예후가 좋습니다. 그러나 저소득 국가에서는 치료 접근성이 낮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어, 이 날은 의료 불평등 해소를 촉구하는 연대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금색 리본을 가슴에 달거나 주요 랜드마크에 금색 조명을 비추는 행사를 통해 암과 싸우는 어린 영웅들을 응원합니다. 모든 아이가 질병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전 인류의 관심을 촉구하며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이 기념일의 본질적인 목표입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B.C. 399 – 소크라테스 사형 선고 (고대 그리스)
    고대 아테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 재판관들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명목으로 기소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당시 아테네의 중우정치를 비판하고 권력자들의 무지를 문답법으로 폭로한 것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구걸하듯 선처를 구하는 대신 당당하게 진리를 변론했습니다. 배심원 투표 결과 유죄 판결과 함께 사형이 결정되었고, 그는 탈옥을 권유하는 제자들에게 '국가와의 약속과 법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성이 정치적 군중 심리에 의해 희생된 인류사적 비극으로 평가받으며, 이후 서양 철학의 흐름을 바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정의, 법치, 그리고 철학적 양심에 대한 무거운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 1113 – 성 요한 기사단 공식 승인 (바티칸)
    교황 파스칼 2세가 교황 칙령을 통해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을 공식적인 가톨릭 수도회이자 기사단으로 승인했습니다. 11세기 중반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성지 순례객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에서 시작된 이 단체는 교황의 승인을 통해 교회법상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국왕이나 영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체적인 규율에 따라 운영되었으며, 십일조를 징수하고 고유한 재산을 소유할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초기에는 구호와 의료 활동에 전념했으나, 십자군 전쟁의 격랑 속에서 점차 성지를 수호하는 강력한 군사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후 '병원 기사단' 혹은 '몰타 기사단'으로 불리며 유럽 역사와 지중해 제해권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현재도 이들은 국제법상 주권을 인정받는 인도주의 기구로서 전 세계 재난 지역에서 의료 구호 활동을 펼치며 900년 전의 설립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 1764 – 세인트루이스 도시 설립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프랑스 출신의 모피 상인 피에르 라클레드와 그의 의붓아들 오귀스트 슈토가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 강이 만나는 요충지에 정착지를 건설하며 오늘날의 세인트루이스를 설립했습니다. 이 지역은 북미 대륙의 중심부에서 수로를 통해 사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천혜의 교통지였으며, 설립 직후부터 모피 무역의 핵심 거점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도시의 명칭은 프랑스의 루이 9세 성왕을 기려 지어졌으나, 이듬해 파리 조약으로 영토권이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등 파란만장한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1803년 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완전히 미국 영토가 된 세인트루이스는 서부 개척 시대를 여는 '서부로의 관문'으로서 탐험가 루이스와 클라크의 출발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의 우아한 건축 양식과 미국의 개척 정신이 결합된 이 도시는 중서부의 경제와 문화 발전을 선도하며 미국 확장의 역사적 상징물인 '게이트웨이 아치'를 통해 그 역사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 1867 – 블루 다뉴브 왈츠 초연 (오스트리아)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불후의 명작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빈 남성 합창 협회의 연주회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패배하여 사회 전체가 패배주의와 우울함에 빠져 있었으며, 슈트라우스는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경쾌한 곡을 작곡했습니다. 초연은 가사가 포함된 합창곡 형태였으나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관현악 버전으로 연주되면서 전 유럽을 매료시켰고, 빈의 세련된 문화와 낭만을 상징하는 불멸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곡은 빈 신년 음악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전통적인 레퍼토리이자 오스트리아의 정체성을 담은 비공식 국가처럼 여겨집니다. 도나우강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선율은 19세기 왈츠 음악의 정점을 보여주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 1898 – 메인 호 폭발 사건 (쿠바)
    쿠바 하바나 항구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해군의 전함 메인 호(USS Maine)가 의문의 폭발 사고로 침몰하며 승조원 26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여 독립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미국은 자국민 보호와 세력 확장을 위해 군함을 파견한 상태였습니다. 폭발의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으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황색 언론'들은 이를 스페인의 어뢰 공격으로 단정 짓고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며 대중의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메인 호를 기억하라! 스페인을 지옥으로!"라는 구호는 미 전역을 뒤덮었고, 결국 이는 미국-스페인 전쟁의 발발로 이어졌습니다. 전쟁 결과 미국은 승리하여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획득하고 쿠바를 보호국화하며 본격적인 세계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선동이 어떻게 국제 분쟁을 유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42 – 싱가포르 함락 (영국/일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제국의 동남아시아 핵심 요새였던 싱가포르가 일본군에게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이 이끄는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의 정글을 뚫고 자전거 부대를 앞세워 전격전을 펼쳤으며, 해상 공격만을 예상했던 영국군의 허를 찔렀습니다. 아서 퍼시벌 중장이 지휘하던 약 8만 명의 영국 및 영연방군은 일본군의 심리전과 보급로 차단에 밀려 결국 굴욕적인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윈스턴 처칠 총리는 이를 "영국 군사 역사상 최대의 재앙이자 최악의 항복"이라고 평할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영국의 동양 지배권은 치명상을 입었고, 일본은 싱가포르를 '쇼난토'로 개칭한 뒤 3년 6개월간 잔혹한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이는 아시아 내 서구 열강의 위상이 무너지고 전후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지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현대 싱가포르 국가 건설의 뼈아픈 교훈이 된 사건입니다.
  • 1946 – 애니악(ENIAC) 공개 (미국)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무어 전기공학부에서 세계 최초의 범용 디지털 전자 컴퓨터인 애니악이 세상을 향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존 모클리와 프레스퍼 에커트의 주도로 개발된 이 거대한 기계는 1만 8천여 개의 진공관과 수많은 전선으로 이루어졌으며, 무게가 30톤에 달하고 약 150킬로와트의 전력을 소비했습니다. 애니악은 십진법 체계를 사용하여 초당 5천 번의 덧셈을 수행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사람이 수작업으로 며칠씩 걸리던 포탄 탄도 계산을 단 30초 만에 해결하는 혁신적인 성능이었습니다. 비록 현대의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하드웨어 회선을 변경하여 다양한 계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현대 프로그래밍 개념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애니악의 등장은 기계식 계산기 시대를 종식시키고 인류를 디지털 정보화 시대로 안내한 위대한 과학적 성취이며, 이후 컴퓨터 공학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 1950 – 중소 우호 동맹 상호 원조 조약 체결 (중국/소련)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 주석과 소비에트 연방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이 모스크바에서 만나 두 공산 국가 간의 강력한 동맹을 선포하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은 어느 한 국가가 제3국(주로 일본 및 그 동맹국인 미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즉각적으로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상호 방위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련은 중국의 전후 복구를 돕기 위해 3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고 기술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중국의 중공업 발전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는 냉전 초기 사회주의 진영의 압도적인 결속력을 보여준 사건으로, 당시 서방 세계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비록 훗날 이념 갈등과 영토 분쟁으로 인해 중소 분쟁이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지만, 조약 체결 당시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거대 사회주의 블록의 형성을 의미하며 국제 정치 지형을 뒤흔든 결정적인 외교적 사건이었습니다.
  • 1971 – 영국 화폐 십진법 체계 도입 (영국)
    영국이 수천 년간 고수해 온 복잡한 화폐 단위인 파운드-실링-펜스(£sd) 체계를 버리고 현대적인 10진법 체계로 전환한 '십진법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이전까지는 1파운드가 20실링, 1실링이 12펜스로 구성되어 암산과 무역 계산에 큰 불편을 초래했으나, 이날을 기점으로 1파운드를 100뉴펜스로 나누는 간결한 체계가 도입되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국민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수년간 대대적인 교육 포스터를 배포하고 방송을 통해 환산법을 알렸으며, 상점마다 두 종류의 가격표를 병기하도록 했습니다. 이 변화는 영국의 경제를 유럽 공동체(EC) 및 국제 표준에 맞추려는 현대화 전략의 일환이었으며, 효율적인 상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사회에서 이처럼 급격한 생활 시스템의 변화를 수용했다는 점은 당시 영국의 국가적 쇄신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2003 – 이라크 전쟁 반대 세계 동시 평화 시위 (국제)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반대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가 전 세계 60여 개국, 6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되었습니다. 런던에서는 200만 명에 육박하는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로마, 베를린, 마드리드 등 유럽 주요 도시와 뉴욕, 도쿄, 서울에서도 수많은 시민이 "전쟁 반대"와 "석유를 위한 학살을 멈춰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기네스북은 이를 단일 주제로 열린 역대 최대 규모의 행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시위대는 UN의 사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무력 행사를 강행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비록 이 거대한 평화의 물결이 실제 전쟁 발발을 막아내지는 못했으나, 인터넷과 시민 사회의 연대가 국가 권력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제2의 초강대국'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시위는 현대 평화 운동의 정점이자 시민 의식의 성장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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