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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1월 11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6.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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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 오늘의 기념일

  • 독립선언기념일 (모로코)
    1944년 1월 11일, 모로코의 민족주의자들이 프랑스 보호령 당국에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제출한 날을 기념하는 국가 경축일입니다. 당시 이스티클랄(독립)당을 중심으로 한 지도자들은 술탄 모하메드 5세의 지지 아래 주권 회복과 민주적 헌법 수립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이 사건은 모로코 근대사에서 단순한 저항을 넘어 체계적인 독립 투쟁의 기틀을 마련한 분기점으로 평가받습니다. 비록 선언 직후 많은 애국지사가 체포되는 수난을 겪었으나, 국민들의 자주독립 의지를 하나로 결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모로코 전역에서는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가적 자부심을 되새기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거행합니다.
  • 카가미비라키 (일본)
    일본에서 새해를 마무리하며 신에게 공양했던 둥근 떡인 카가미모치를 깨뜨려 나누어 먹는 전통 풍습으로, 대개 1월 11일에 거행됩니다. '비라키'라는 명칭은 '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한 해의 운세가 활짝 열리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무라이 문화의 영향으로 칼을 대는 것이 금기시되었기에 망치나 손으로 떡을 부수는 독특한 형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쪼개진 떡은 팥죽이나 장국에 넣어 가족, 동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무병장수와 화합을 기원합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유도나 검도 같은 무도장, 기업체에서도 신년의 각오를 다지는 중요한 의식으로 계승되고 있으며 지역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문화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 국가 유아기 교육의 날 (미국)
    영유아기 교육의 결정적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널리 알리고 보육 환경 및 관련 정책의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인간의 지적, 정서적 발달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기에 양질의 교육적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의 미래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 형성된 기초 능력이 성인기의 학업 성취도와 경제적 자생력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데이터를 통해 증명하며 지속적인 공적 투자를 촉구합니다. 매년 1월 11일을 기점으로 미국 전역의 교육 기관과 시민 단체들은 학부모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보육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 및 처우 개선을 위한 대중적인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 알바니아 공화국 선포일 (알바니아)
    1946년 1월 11일,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알바니아에서 기존의 군주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인민 공화국 체제의 수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파시스트 점령군을 축출한 뒤 주권을 회복한 알바니아 제헌 의회는 엔베르 호자가 이끄는 공산주의 세력의 주도 아래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는 수 세기에 걸친 외세의 지배와 전제 군주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 체제를 확립했음을 의미하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비록 이후 오랜 기간 폐쇄적인 독재 정치를 겪기도 했으나, 현대 알바니아에서는 이 날을 국가의 주권 확립과 공화제라는 현대적 국가 형태가 시작된 기원으로 보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관련 학술 행사나 기념식을 개최합니다.
  • 에우헤니오 마리아 데 호스토스의 날 (푸에르토리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위대한 교육가이자 철학자인 에우헤니오 마리아 데 호스토스의 탄생을 기리는 날입니다. '안틸레스의 위대한 시민'으로 불리는 그는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자유와 여성 교육의 권리 확대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푸에르토리코와 쿠바의 독립을 주장하며 도미니카 공화국과 칠레 등지에서 근대적 교육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세웠습니다. 그의 도덕적 용기와 지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매년 1월 11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교육 현장에서는 그의 사상을 탐구하는 특별 수업과 강연이 열리며, 후세대들에게 인권 존중과 지식의 중요성을 전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 전국 금연의 날 (미국)
    1964년 1월 11일, 미국 보건총감 루서 테리가 흡연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힌 최초의 공식 보고서를 발표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당시 보고서는 7,000건 이상의 과학적 연구를 종합하여 흡연이 폐암과 심장병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국가 차원에서 확증하며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발표는 미국 내 담배 소비가 감소세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었으며, 이후 공공장소 금연 구역 설정과 담배 광고 규제 등 강력한 보건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오늘날 보건 단체들은 매년 1월 11일을 맞아 흡연의 위험성을 재차 경고하고, 새해를 맞아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지원과 상담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합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055 – 테오도라 황후의 동로마 제국 단독 통치 시작 (동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마케도니아 왕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여제인 테오도라가 언니 조에의 남편이었던 콘스탄티누스 9세가 서거한 뒤 단독 황제로 즉위하여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70세의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강력한 행정력을 발휘하여 귀족 세력의 전횡을 억제하고 관료 체제를 정비하는 등 안정적인 통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테오도라는 남성 중심의 정치 환경 속에서도 독자적인 주권을 행사하며 제국의 기틀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녀가 후계자 없이 사망함으로써 약 2세기에 걸친 마케도니아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그녀의 단독 통치 시기는 동로마 역사에서 여성 황제가 보여준 정치적 카리스마와 정통성의 상징으로 기록되어 후대 역사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 1569 – 영국 최초의 국가 복권 추첨 시작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승인 아래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가 주관하는 복권 추첨이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서쪽 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노후한 항만 시설의 보수와 선박 건조 등 국가 방위 시설 확충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조세 이외의 방법으로 마련하기 위해 40만 장의 복권을 발행했습니다. 한 장당 10실링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당첨자에게 지급되는 현금과 은식기, 고급 태피스트리 같은 화려한 경품은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비록 판매 실적이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이는 국가가 직접 사행 산업을 관리하여 공공 재정으로 전환하려 했던 최초의 근대적 시도라는 점에서 경제사적 가치가 큽니다. 이 사건 이후 영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공공 기금 마련을 위한 복권 제도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1787 – 윌리엄 허셜의 천왕성 위성 발견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자신이 발견했던 행성인 천왕성의 궤도를 도는 두 개의 대형 위성, 티타니아(Titania)와 오베론(Oberon)을 처음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그가 직접 제작한 대형 반사 망원경을 사용하여 육안으로는 식별 불가능한 먼 우주의 천체를 정밀하게 탐색한 결과였습니다. 위성들의 명칭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 왕과 왕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이는 태양계 구성 원리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허셜의 이 발견은 태양계 외곽 행성들의 복잡한 위성 시스템을 연구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후대 천문학자들이 고성능 관측 장비를 통해 우주의 신비를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초 데이터이자 기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 1861 – 앨라배마주의 미국 연방 탈퇴 및 독립 선포 (미국)
    미국 남북전쟁 발발 직전인 1861년 1월 11일, 앨라배마주는 특별 회의를 통해 연방 탈퇴 조례를 가결하고 스스로를 '앨라배마 공화국'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노예제 유지와 주의 권리 강화를 주장하던 남부 주들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통령 당선에 반발하며 조직적으로 연방을 이탈하던 흐름의 일환이었습니다. 앨라배마의 탈퇴는 남부 연합의 형성을 가속화했으며, 실제로 앨라배마의 몽고메리는 남부 연합의 초기 수도가 되는 등 전쟁 수행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국가의 통합과 인권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심각한 내부 갈등이 결국 처참한 내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정치적 변곡점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 역사에서 이는 연방주의와 주권 사이의 극한 대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교육되고 있습니다.
  • 1867 – 베니토 후아레스의 멕시코 대통령 재취임 (멕시코)
    프랑스의 간섭군과 그들이 세운 맥시밀리언 황제의 제국 체제를 무너뜨린 베니토 후아레스가 멕시코 시티로 귀환하여 대통령직을 다시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주민 출신의 변호사였던 후아레스는 외세의 지배에 맞서 끈질긴 저항 운동을 전개한 끝에 승리를 거두었으며, 공화국 정부의 정통성을 다시 확립했습니다. 그는 집권 후 교회와 국가의 분리, 토지 개혁, 근대적 공교육 체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레포르마(개혁)'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여 멕시코가 현대 국가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복귀는 멕시코 역사에서 인종적,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고 법치주의를 세우려 했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오늘날에도 후아레스는 멕시코의 헌법 가치를 수호하고 국가의 주권을 지켜낸 가장 존경받는 위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22 – 인슐린의 최초 인체 투여 성공 (캐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프레더릭 밴팅과 찰스 베스트 연구팀이 당뇨병을 앓던 14세 소년 레너드 톰슨에게 정제된 인슐린을 최초로 투여하여 생명을 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당뇨병은 발병 후 짧은 기간 내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으나, 인슐린 투여 직후 소년의 치솟던 혈당 수치가 정상 범위로 조절되는 기적 같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 실험의 성공은 의학사에서 당뇨병이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님을 선포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이 공로로 프레더릭 밴팅은 이듬해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인슐린은 대량 생산 과정을 거쳐 전 세계 수천만 명의 당뇨 환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의약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발견은 현대 내분비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으며, 인류의 평균 수명을 연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1935 – 아멜리아 이어하트의 태평양 단독 비행 성공 (미국)
    전설적인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이어하트가 하와이 호놀룰루를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오클랜드까지 이어지는 태평양 구간을 여성 최초로 단독 비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약 18시간 동안 거친 기상 조건과 고립된 바다 위에서의 공포를 극복하며 이뤄낸 이 비행은 당시 항공 기술의 한계에 도전한 위대한 쾌거였습니다. 이미 1932년에 대서양 단독 횡단에 성공했던 그녀는 이번 비행을 통해 여성의 한계를 규정짓던 사회적 편견을 다시 한번 무너뜨렸습니다. 그녀의 성공은 항공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에게 도전 정신과 자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멜리아 이어하트는 이후에도 수많은 비행 기록을 세우며 현대 항공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으며, 그녀의 실종과 관련된 미스터리는 여전히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 1942 – 일본의 네덜란드 동인도 침공 개시 (인도네시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제국이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전략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의 타라칸과 마나도에 대한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잡기 위해 석유와 고무 등 필수 자원의 보고였던 이 지역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으며, 압도적인 해군력을 앞세워 네덜란드 수비대를 무력화했습니다. 이 침공은 네덜란드가 수 세기 동안 유지해 온 동남아시아 식민 지배 체제가 붕괴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비록 인도네시아 민중들은 이후 가혹한 일본의 군사 점령기를 겪게 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일어난 무력 충돌과 행정 공백은 역설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자결 의지를 다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현대 인도네시아가 건국되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의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1994 – 나토의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PfP)' 제안 (벨기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새로운 안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 프로그램을 공식 제안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나토 회원국이 아닌 동유럽 국가들과 구소련 연방 국가들이 나토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적 틀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 적대 관계였던 국가들이 공동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하고 군사적 투명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나토가 단순한 방어 동맹을 넘어 포괄적인 유럽 안보 협력 체제로 진화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외교적 창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다수의 동유럽 국가가 나토에 정식 가입하는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은 실질적인 교육과 준비의 장으로서 기능하며 유럽의 지정학적 지형을 변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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