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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오늘의역사

광복절(8월 15일) – 일본 침략의 시발점부터 해방까지

by 시넘사 2025.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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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1) 광복절 개요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광복'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주권과 독립을 회복한 역사적 사건을 상징합니다. 이 날은 또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수립된 날로, 해방과 건국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의미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매년 중앙기념식을 비롯해 국가유공자 포상, 태극기 게양, 문화·교육 행사 등을 개최하며, 국민들에게 독립의 가치와 역사를 계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광복절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오늘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념일입니다.

2) 일본 침략의 역사적 배경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을 통해 이미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근대적 의미의 식민 지배로 이어지는 흐름은 19세기 말에 본격화되었습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군사력과 산업력을 빠르게 성장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구 열강과 같은 불평등 조약 체결 방식을 동아시아 국가들에 적용하며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조선은 당시 국제정세 변화에 대응할 군사·외교·경제 역량이 부족했으며, 열강의 세력 경쟁 속에서 점차 일본의 침투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제 환경과 국내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본 침략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3) 근대적 침탈의 시발점

3-1. 운요호 사건(1875)

1875년 9월 일본 군함 운요호는 조선 강화도 해역에 무단 진입하여 초지진을 포격하는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조선에 개항과 통상 요구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운요호 사건은 무력 시위를 통한 외교적 강요의 전형이었으며, 이후 불평등 조약 체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이 근대 국제정치의 힘의 논리에 의해 주권이 위협받는 첫 단계였고, 일본은 이를 발판 삼아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갔습니다.

3-2. 강화도조약(1876)

1876년 2월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조선을 자주국으로 명시했지만, 일본에게 치외법권을 부여하고 해안 측량을 허용하는 등 불평등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조약은 향후 원산(1880년)과 인천(1883년) 등의 개항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조약은 조선의 관세권과 치안 주권을 제약하며 일본의 경제적·군사적 진출을 제도화한 첫 사례로, 이후 주권 침탈의 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3-3. 제물포조약(1882)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은 제물포조약을 통해 배상금 지급과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을 조선에 강요했습니다. 이는 일본군의 상시 주둔을 합법화해 조선 내정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조약이었습니다. 이러한 합의는 조선의 치안과 외교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시켰습니다.

4) 정치·외교 개입과 주권 침탈

1884년 갑신정변은 일본의 지원을 받은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켜 근대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청군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이후 조선은 청·일 양국의 세력 경쟁 속에서 주권 행사가 심각하게 제약되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발발로 청군이 파병되자 일본도 군대를 파견했고, 이는 청일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은 승리 후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청의 조선 종주권 포기를 받아내고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면서 조선 내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고, 아관파천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었지만 국제적 고립과 일본의 압박은 계속되었습니다. 1904~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일본은 한일의정서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 사실상 보호국화했습니다.

5) 한일병합과 식민지 지배 구조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8월 29일 공포로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습니다. 1910년대 일본은 무단통치를 실시하여 헌병경찰이 전국을 통제했고, 언론·출판·결사의 자유가 억압되었습니다. 토지조사사업(1910~1918)으로 토지를 일본인과 일본 자본에 유리하게 재분배했고, 회사령(1911)으로 조선인의 기업 활동을 통제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은 문화통치로 전환했으나 통제는 여전했습니다. 1920년대에는 산미증식계획,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전시총동원체제가 도입되었습니다. 1939년 말 공포된 창씨개명은 1940년 2월부터 시행되었고, 1944년에는 조선인 징병제가 실시되어 전쟁터에 강제 동원되었습니다.

6) 국내외 독립운동

식민지 시기 국내에서는 의병 활동, 비밀결사, 학생운동, 노동·농민운동이 지속되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은 전국적 만세 시위로 확산되어 해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촉발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중국 관내에서는 봉오동·청산리 전투(1920) 같은 무장 독립전이 전개되었습니다. 임시정부는 외교 활동과 군사 조직화를 지속했으며, 1940년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연합군과 협력해 대일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누적된 성과가 해방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7) 해방과 8·15의 의미

1945년 7월 포츠담 선언으로 연합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8일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자 일본은 전쟁 지속이 불가능해졌습니다. 8월 15일 일본 천황은 항복을 선언했고, 한반도는 36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곧 미군과 소련군의 38도선 분할 점령으로 이어져 한반도의 분단이 시작되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남한은 법적·제도적 주권을 확립했습니다. 광복절은 식민지 지배 종식, 독립운동 결실, 국가 건국이라는 복합적 의미를 지닌 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8) 핵심 연표

연도 사건 설명
1875 운요호 사건 일본 군함이 강화도 해역에 무단 침입해 포격을 가하며 조선에 개항 압박을 시작함.
1876 강화도조약 치외법권 부여, 해안 측량 허용 등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 체결.
1882 제물포조약 임오군란 후 일본 배상금 지급과 군대 주둔 허용.
1895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 사건, 반일 감정 고조.
1905 을사늑약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
1910 한일병합 대한제국의 일본 강제 병합, 식민 지배 시작.
1919 3·1운동 전국적 만세 시위, 임시정부 수립 계기.
1920 봉오동·청산리 전투 무장 독립전의 대표적 승리.
1939~40 창씨개명 일본식 성명 강요, 1940년 2월 시행.
1945 해방 일본 항복, 한반도 식민 지배 종식.
1948 대한민국 정부 수립 헌법 시행과 국가 운영 개시.

 

📚 용어 해설

  • 운요호 사건 –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해역에 무단 침입해 초지진을 포격한 사건입니다. 일본은 이를 빌미로 조선에 개항과 통상을 요구했습니다.
  •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 1876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입니다. 일본에 치외법권과 해안 측량권을 부여하는 등 불평등 조항을 담았습니다.
  • 치외법권 – 외국인이 다른 나라에서 현지 법이 아닌 자기 나라 법을 적용받는 권리입니다.
  • 제물포조약 –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이 배상금과 공사관 경비병 주둔을 조선에 강요한 조약입니다.
  • 을미사변 – 1895년 일본인 세력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입니다.
  • 아관파천 –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으로,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습니다.
  •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한 조약입니다.
  • 한일병합조약 –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조약입니다.
  • 무단통치 – 1910년대 일본이 헌병경찰로 조선을 강압적으로 통치한 방식입니다.
  • 토지조사사업 – 1910~1918년 실시된 토지 조사로, 일본인과 일본 자본에 유리하게 토지가 재분배되었습니다.
  • 회사령 – 1911년 제정된 법으로, 조선인들이 회사를 세우려면 총독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습니다.
  • 문화통치 – 3·1운동 이후 일본이 겉으로는 유화적인 정책을 펴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통제를 지속한 통치 방식입니다.
  • 산미증식계획 – 1920~1934년 쌀 생산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정책으로,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 만주사변 – 1931년 일본이 중국 만주를 무력 점령한 사건입니다.
  • 전시총동원체제 – 1937년 이후 전쟁에 필요한 인력·물자를 국가가 총동원하는 체제입니다.
  • 창씨개명 – 1939년 말 공포되고 1940년 2월부터 시행된,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정책입니다.
  • 징병제 – 1944년부터 조선인 남성을 일본군에 강제로 입대시킨 제도입니다.
  • 포츠담 선언 – 1945년 7월 미국·영국·중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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