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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 해석: 광기의 윤리, 근대소설의 시작

by 시넘사 2025. 4. 25.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와 시대의 문턱에서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는 스페인의 르네상스를 살아간 문인이자 전사,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를 방황했던 인간이었다. 그가 살던 시기인 16세기 말~17세기 초는 스페인 제국의 정치적, 종교적 팽창기였지만 동시에 기사도 이념의 퇴색현실주의 문학의 부상이라는 커다란 전환의 시기이기도 했다.

돈키호테』는 바로 이 과도기의 한가운데서 출현했다. 1605년과 1615년에 걸쳐 출간된 1·2부는 단순한 풍자소설이 아니라, **낡은 가치 체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문학적 패러다임을 구축한 선언문**이었다. 이는 종이 위에서만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문학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바로 그 문턱에서, 현실과 환상의 충돌 속에 피어난 인간 정신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 문학적 해석: 인물과 구조, 광기와 윤리

『돈키호테』는 이중적 인물 구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사도에 미친 노인 돈키호테와, 현실을 중시하는 농부 산초 판사. 그러나 이 이분법은 소설이 진행될수록 점점 모호해진다. 산초는 점차 돈키호테의 이상을 이해하고 믿기 시작하며, 돈키호테 역시 현실의 무게를 감지해간다. 결국 두 인물은 **서로를 통해 변화하는 자아의 거울**이 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단순한 광인이 아닌 윤리적 몽상가로 제시한다. 그는 거짓된 질서에 복종하는 대신, 자기만의 세계를 재창조함으로써 존재의 위기를 돌파한다. 이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전초적 이미지이자, 동시에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적 선택의 미학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광기는 세계의 무관심에 맞선 주체적 상상력이며, 그의 행동은 진리를 향한 실천의 서사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이란 단순한 비이성인이 아니라, 사회가 억압한 비합리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돈키호테의 광기는 단순한 착란이 아니라, 시대의 윤리를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고발이자, 진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허구 속에 내던진 존재의 서사이다. 돈키호테는 비이성이 아니라, 이성의 경계 밖에서 이성의 타락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형식적으로도 이 작품은 근대소설의 문을 여는 자기반영적 메타픽션이다. 2부에서 등장인물들은 1부 『돈키호테』의 책을 읽었고, 주인공조차 자신이 허구의 인물임을 자각한다. 이 시점에서 현실-허구의 경계는 붕괴되며, 작가-독자-인물 사이의 권력 구조가 무너진다. 이 구조는 이후 보르헤스, 나보코프,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후기 모더니즘 소설의 기초가 되었다. 문학이 더 이상 환상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 자체를 재구성하고 반성하는 구조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상징적으로, 돈키호테가 맞서는 '풍차'는 단지 허상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세계의 구조화된 냉소, 타락한 이성, 비인격화된 사회 시스템**을 예견하는 상징이다. 풍차를 향한 돌진은 무모한 광기가 아니라, **침묵한 세계를 향한 윤리적 고발**이다. 그 풍차는 오늘날의 대중 매체, 관료제, 알고리즘화된 사회 의식과도 겹쳐 읽힌다. 이 상징은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해서 다른 얼굴로 변주된다.

📚 지금 시대와의 연결성

오늘날 우리는 더는 풍차를 거인이라 착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가짜 뉴스, 자본의 지배, 자기기만 속에서 길을 잃는다. 세르반테스의 세계에서 '광기'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폭력적 구조를 돌파하는 하나의 감각적 장치였다. 이점에서 돈키호테는 오히려 현대 사회의 저항 주체로 재조명될 수 있다.

지금 우리 곁에도 '돈키호테'들은 존재한다. 기후위기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청년들, 대의명분을 믿고 투쟁하는 사회운동가들, 혹은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며 자립적 삶을 실험하는 이들. 그들은 자주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냉소와 체념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도전과 신념의 마지막 표정**이다. 『돈키호테』는 그런 이들에게 이름 없는 연대를 건네는 문학적 기록이다.

또한 이 소설은 현대 문학에서 사라져가는 윤리적 상상력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상을 좇는 자는 광인으로 취급받고, 순수한 열정은 실용주의 앞에서 조롱당하는 시대에, 돈키호테는 오히려 **윤리의 마지막 불꽃**처럼 읽힌다. 이는 『이방인』의 뫼르소,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차라투스트라와도 상통하는 지점이다.

『돈키호테』는 지금 이 순간, 진실을 믿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행위가 되어버린 시대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자만이, 역설적으로 가장 윤리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요약: 간단한 줄거리

라 만차 지방의 몰락한 귀족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도 문학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칭하며 모험에 나선다. 그는 낡은 갑옷을 입고, 마른 말 로시난테를 타고, 농부 산초 판사를 종자로 삼아 세상을 정의로 되돌리겠다는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거인과 악당은 실상 풍차와 무고한 사람들일 뿐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는 진정한 인간의 존엄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