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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방구석 세계걷기 195

유럽6편 : 라트비아 (Latvia)-발트의 중심, 라트비아 국가 가이드

by 시넘사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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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구시가지

 

 

1. 국가 기본 정보

  • 공식 명칭: 라트비아 공화국 (Republic of Latvia)
  • 수도: 리가 (Riga)
  • 면적: 64,589 km2
  • 추정 인구 (2025): 약 1,857,000 명
  • 정치 체제: 의원내각제 공화국
  • 공용어: 라트비아어
  • 통화: 유로 (EUR)
  • 주요 종교: 루터교·가톨릭·정교·무종교 혼재
  • 시간대: UTC +2 (표준) / UTC +3 (하계)

2. 국기와 위치·지리 개요

라트비아 국기

        진홍색은 자유를 위해 흘린 라트비아인의 피

흰색은
평화와 진실을 상징합니다.

라트비아는 발트 3국 중 중앙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발트해에 498 km 해안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쪽은 에스토니아, 남쪽은 리투아니아, 동쪽은 러시아, 남동쪽은 벨라루스와 접합니다. 국토는 평탄한 충적평야와 빙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우야·다우가바 두 강이 남북·동서를 가로지릅니다.

3. 라트비아 역사: 과거와 오늘

🏺 선사 · 고대 정착

빙하가 물러난 기원전 9 천 년경, 지금의 라트비아 땅에는 사슴과 순록을 추적하던 수렵 집단이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그들은 강가와 해안에 계절 거주지를 만들며 물과 식량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원전 3 천 년 무렵, 신석기 해안 문화가 확산되면서 발트 어족 언어가 분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호박·모피를 가공해 먼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까지 교환했고, 기원전 1 천 년경 철기가 도입되자 쿠르세·셀로니·라트갈리 등 여러 부족이 하천 주변에 목조 요새를 세우며 농경 정착촌을 이뤘습니다.


⚔️ 십자군과 리보니아 연맹

12세기 말, 교황청은 북방 선교를 독려했습니다. 1201년 브레멘 출신 알베르트 대주교가 다우가바 하구에 리가를 세웠고, 1202년에는 리보니아 형제기사단이 탄생했습니다. 기사단은 강제 세례와 요새 건설로 세력을 넓혔지만, 토착 부족의 저항도 계속되었습니다.

1237년 기사단은 튜턴 기사단 산하로 들어갔고, 1435년 12월 4일 발크 조약을 통해 한자 도시·주교령·기사단이 리보니아 연맹을 조직했습니다. 이 연맹은 관세와 방어를 공동 관리해 발트 무역을 안정시켰지만, 1558년 모스크바 차르국이 침공하면서 해체되었습니다.


🏰 폴란드·스웨덴·러시아 지배

연맹이 무너지자 1561년 리보니아 조약이 체결되어 남부 라트갈레는 폴란드·리투아니아, 북부 리보니아는 스웨덴에 넘어갔습니다. 스웨덴은 1629년 알트마르크 조약으로 리가항을 확보하고 무역세 개혁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1700년에 시작된 대북방전쟁은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1721년 뉘스타드 조약으로 러시아 제국이 리보니아를 편입했고, 1795년 쿠를란트 공국까지 합병하여 현재 라트비아 영토가 모두 제국령이 되었습니다.


📜 민족 각성과 독립
러시아 제국 치하에서도 변화는 이어졌습니다. 19세기 중반 철도와 공장이 들어서며 도시 노동계층이 성장했고, 신라트비아 운동이 민족 문학과 언어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1905년 혁명기에는 자치를 요구하는 농민·노동자 봉기가 거세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1918년 11월 18일, 리가 인민평의회는 라트비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1920년 소비에트 러시아와 평화 조약이 체결되며 국제적 승인을 얻어 국경도 확정되었습니다.


🚩 권위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
독립 공화국은 토지 개혁으로 농민에게 땅을 분배하고 산업을 키웠지만, 1934년 카를리스 울마니스 총리가 의회를 해산해 권위주의 체제를 세웠습니다.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 비밀 의정서로 라트비아는 소련 영향권에 묶였습니다. 1940년 6월 소련군이 진주해 라트비아 SSR이 선포됐고, 이듬해 6월 대숙청으로 수만 명이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1941년 7월에는 독일군이 점령해 총독부를 설치했고 약 7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습니다. 1944년 붉은 군대가 다시 진주하면서 라트비아는 소련 체제로 복귀했습니다.


☭ 소련 체제와 노래 혁명
전후 라트비아 SSR은 전자·기계 산업 기지로 성장했지만, 러시아계 이주가 대규모로 이뤄져 1980년대 초 라트비아어 모어 인구 비율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1949년 작전 프리보이로 4만여 농민·지식인이 강제 이송된 상처도 남았습니다.

1987년 리가 댐 반대 집회가 시작되어 환경·문화 운동이 확산되었고, 1988년 대규모 합창 시위가 ‘노래하는 혁명’으로 불렸습니다.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 시민은 약 690 km 인간띠 ‘발트 체인’을 이루어 독립 의지를 알렸습니다.

1990년 5월 4일 최고회의는 독립 복원을 결의했고,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가 실패하자 라트비아는 완전한 주권을 회복했습니다.


🇪🇺 현대 라트비아
독립 후 라트비아는 가격 자유화와 민영화를 추진해 1990년대 중반 연 6 %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2004년에는 EU와 NATO에 동시에 가입해 관세와 안보 틀을 유럽 규범에 맞췄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GDP가 두 자릿수 하락했지만, EU·IMF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긴축과 구조조정을 실시해 2011년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습니다. 2014년 1월 유로화를 채택했고, 최근 정부는 디지털·재생에너지·생명공학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경제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방비도 GDP 2.5 % 수준으로 끌어올려 NATO 배치군과 함께 사이버 방어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 인구는 약 185만 7천 명, 명목 GDP는 422억 USD로 집계됩니다.

4. 라트비아만의 독보적 특징

  • 라트비아 노래·춤 축제: 5년마다 열리는 합창·무용 대제전으로 UNESCO 인류무형유산 등재
  • 유럽 최대 호박 산지: 발트해 해변에서 채취되는 천연 호박 공예
  • 리가 아르누보 지구: 800여 동의 장식적 아르누보 건축 밀집 지역
  • 다우가바 전력 루프: 강을 활용한 수력·풍력 결합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 Dainas 민속 4행시: 30만 편 이상 전승된 짧은 민요 형태의 구전 시문학

5. 대표 명소

  • 리가 구시가지: 중세 한자 상업 지구와 돔 대성당, 1997년 세계유산 등재
  • 아르누보 거리(엘리자베테·알베르타): 건축 양식 테마 산책로
  • 가우야 국립공원: 라트비아 최대 보호구로 신성한 사암 절벽과 시굴다 성 존재
  • 룬달레 궁전: 바르톡한 후기 바로크·로코코 궁전, 풍경식 정원이 유명
  • 유르말라 해변: 32 km 백사장·소나무 숲 휴양지

6. 여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

  • 기후: 11‒3월 기온이 영하 10 ℃까지 하락하므로 방한 의류가 필요합니다.
  • 보건: 숲·농촌 방문 시 진드기매개뇌염(TBE) 예방 접종과 긴소매 복장을 권장합니다.
  • 치안: 리가 구시가지·버스 터미널 주변 소지품 절도에 주의하십시오.
  • 교통: 시외도로 제한속도 90 km/h, 주간조명 의무 점등 규정이 있습니다.
  • 문화: 6월 야니(한여름) 축제 기간에는 숙박·교통이 조기 매진되므로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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