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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확장/조선왕조실록 100

제14화 농사직설과 농업 진흥

by 시넘사 202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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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사직설은 왜 필요했을까?

조선 초기, 농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사법은 지방마다 다르고, 구전이나 개인의 경험에 의존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전란과 천재지변 이후에도 체계적인 농업 지식은 정리되지 않았고, 농민들은 경험 부족이나 지리적 차이로 인해 안정적인 수확을 어려워했습니다.

세종은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실제 현장에서 검증된 농사법을 모아 전국에 통일된 기준으로 보급하고자 하였습니다.


2. 세종의 시선은 밭으로 향했다 👑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로 평가받지만, 특히 농업에 대한 관심은 각별했습니다. 그는 “백성의 생업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관료들에게 책상이 아닌 논밭에서 답을 찾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명령이 아닌, 실제 농민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책을 도출하길 바랐습니다. 이는 군주의 시선이 구체적인 삶과 맞닿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합니다.


3. 집현전과 관료들이 들판에 나간 이유

집현전 학자들과 실무 관료들은 각 지방으로 파견되어 농민들과 직접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관찰사와 수령들도 협조하여 각지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농법, 지역 특색에 맞는 작물 재배 방식 등을 수집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학문을 기반으로 한 편찬이 아니라, 실증적이고 참여형으로 제작된 조선 최초의 ‘국가 주도 실용 지침서’였던 것입니다.


 

 

4. 농사직설의 내용과 구성

『농사직설』은 작물별 파종 시기, 토양 관리법, 병해충 방제, 기후 대응법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벼, 보리, 콩, 조, 기장 등 주요 곡물뿐 아니라, 농기구 사용법과 논밭 갈이 방식도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책은 쉬운 말로 구성되었으며, 지방 농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편찬되었습니다. 각 절은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어, 필요할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5. 조선 농업에 끼친 영향

『농사직설』은 조선 농업을 과학화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지역 간 농업 기술 격차를 줄였고, 자연재해 이후 재정비에도 기준이 되는 문헌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후의 농업서인 『금양잡록』, 『산림경제』 등에 영향을 주며 조선 실학 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기술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한 행정 정책의 실천이자 민생을 위한 학문이었으며, ‘국가가 농업을 책임진다’는 의지를 문헌으로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 농사직설과 관련된 실제 사례들

  • 세종의 농민 시찰 지시
    세종은 직접 전국의 농민을 만나라는 명을 내리며, “책상 위 보고서 말고 흙 속에서 듣고 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일부 신하들은 이를 불편해했지만, 그는 “백성의 일을 하려면 백성 곁으로 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 수령의 보고가 책 내용이 되다
    충청도 수령이 보고한 '가을 보리 파종법'은 문장 그대로 『농사직설』에 반영되었습니다. 이는 실무 관료의 목소리가 중앙 정책에 반영된 드문 사례로 평가됩니다.
  • 농사직설은 조선의 교과서
    조선 후기에도 『농사직설』은 향약 및 교육 과정에서 필수 교재로 사용되었으며, 왕실과 군영의 자급 농사에도 참고자료로 쓰였습니다.

🔖 용어 설명표

  • 농사직설: 세종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농서, 실용 중심으로 구성됨
  • 집현전: 학문과 정책 연구를 담당한 조선 전기의 국왕 직속 기관
  • 관찰사: 각 도를 관할하며 행정·사법·군사 전반을 책임지던 지방 고위 관직
  • 실학: 실용성과 민생을 중시하는 조선 후기 학문 경향
  • 산림경제: 농업, 의학, 생활 기술 등을 종합한 조선 후기 백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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