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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확장/조선왕조실록 100

제8화 - 과전법과 경제 기반의 확립

by 시넘사 2025. 5. 27.

🎧 긴 글이 부담스럽다면, 그냥 들어보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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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서론: 혼란의 땅, 개혁의 불씨

조선이 건국되던 1392년, 나라는 심각한 경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고려 말의 무분별한 토지 사유화와 권문세족의 횡포는 민생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새 왕조는 이 땅 위에 새 질서를 세워야 했고, 그 첫걸음은 ‘토지 제도’에서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 과전법이 있었다. 이 글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 건국 초 경제 기반 확립의 실체를 조명한다.

1. 고려 말의 토지문제와 조선 건국의 과제

고려 말기에는 권문세족과 불교 사찰이 국토 대부분을 장악해 있었다. 전민변정도감이 있었지만 실효는 미미했고, 많은 농민이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국왕보다 지방 호족과 권문세족에게 더 많은 충성을 바쳐야 했고, 국가는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은 새 왕조 조선의 절박한 과제였다.

2. 과전법의 제정과 실행: 정도전의 설계

📜『태조실록』 태조 3년(1394년) 기록에는 "전국의 토지를 나누어 사대부에게 전전(田田)을 지급케 하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는 바로 과전법 시행을 의미한다. 설계자는 정도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공의 토지를 다시 나누어 문신 중심으로 재분배함으로써 왕권 기반을 구축하고, 사대부를 왕권에 종속시키려 했다.

과전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 서울과 경기 지역의 토지 중 국유지를 중심으로 지급
  • 고위 문신에게 고등 전지 지급
  • 본인은 사용할 수 있지만 세습은 불가
  • 사망 시 국고로 환수

3. 사대부와 왕권의 갈등: 뿌리 깊은 긴장

이 과전법은 문신 중심의 배분이라는 점에서 무신계층이나 공신 세력의 불만을 샀다. 특히 이방원은 자신의 측근과 무공을 세운 이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지 않음에 반발했고, 훗날 정도전을 제거하는 정치적 명분으로 활용한다. 📜『태종실록』에서도 과전의 배분 문제로 논쟁이 벌어진 기록이 빈번히 등장한다.

4. 실록이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 토지 문서를 불태운 날

📜『태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5년 어느 날, 한 관리가 농민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허위로 과전을 배정한 사실이 발각된다. 태조는 격노하며 “문서를 불사르고 관리를 파직하라”고 명한다. 이 사건은 조선 초반 토지제도의 혼란과 부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제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낸다.

💬 이 일화를 통해 태조의 정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사회 개혁자로서의 책임감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5. 과전법의 성과와 그 한계

과전법은 초기 조선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문신 중심의 관료체제를 공고히 하고, 백성의 경제활동을 일정 수준 회복시켰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토지의 국유화를 전제로 했지만 실제로는 사유화가 지속되었고, 지역 간 불균형도 심각했다. 또한 세습 불가 원칙은 시간이 지나며 흐지부지되었다.

결론: 조선 경제의 뿌리를 세우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순한 정치사의 기록이 아니다. 과전법의 사례처럼, 정책의 설계와 실행, 그 과정에서의 갈등과 시행착오를 생생히 담고 있다. 조선의 경제 기반은 바로 이런 개혁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다져졌다. 과전법은 그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제도의 본질과 권력의 속성을 다시금 되새긴다.


 

📘 용어 정리: 조선 전기 토지제도와 개혁 관련 주요 개념

  •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
    고려 말 공민왕 때 설치된 임시 개혁 기구로, 권문세족이나 불교 사찰이 불법적으로 빼앗은 **토지(田)**와 **노비(民)**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설립됨. ‘전민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의 이름. 신돈이 주도했으며, 조선 과전법 제정의 사상적 전신 역할을 함.
  • 권문세족(權門勢族)
    고려 말기 정계와 경제를 장악한 귀족층. 세습되는 고위 관직과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며 왕보다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함. 조선 건국의 정치적 배경이 된 토지 불평등의 핵심 주체.
  • 신돈(辛旽)
    공민왕의 최측근이자 개혁 정치가. 전민변정도감을 통해 권문세족의 이권을 제한하고자 했으나, 귀족들의 반발로 제거됨. 이후에도 그의 개혁 사상은 조선 개국 세력에 영향을 미침.
  • 과전법(科田法)
    조선 태조 3년(1394)에 제정된 국유지 기반의 토지 분배 제도. 일정한 계급 이상의 관료에게 수조권(세금 징수권)을 부여하되, 사망 시 국가에 환수되도록 하여 세습을 금지함. 국가 재정 안정, 관료 충성 유도, 왕권 강화의 기능을 함께 수행.
  • 과전(科田)
    과전법에 따라 관리에게 지급된 토지를 말함. 토지 자체의 소유권이 아니라, 그 땅에서 거둘 수 있는 세금(수조권)만을 부여한 형태. 토지는 여전히 국가 소유로 간주되었음.
  • 수조권(收租權)
    토지를 직접 경작하거나 소유하지 않더라도, 그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주로 곡식)의 일부를 세금으로 징수할 수 있는 권리. 과전법에서 관리에게 부여된 권리는 모두 이 수조권임.
  • 전전(田田)
    실록 및 당시 문서에서 나타나는 표현으로, 여러 필지의 토지를 총칭하여 지급한다는 의미.
    예) “전전을 지급하다”는 표현은 수조권이 붙은 여러 토지를 하나의 단위처럼 관리에게 나누어줬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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