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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11월 5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5.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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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날

📌 오늘의 기념일

  • 소상공인의 날 (대한민국)
    소상공인의 날은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소상공인의 사회적 기여와 역할의 중요성을 알리고 소상공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입니다. 원래 2월 26일이었으나, 2017년부터 11월 5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소상공인은 경제 활동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날은 소상공인이 직면한 어려움을 재조명하고,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날입니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기념식과 박람회, 컨퍼런스 등이 개최되어 우수 소상공인 포상, 성공 사례 공유, 제품 홍보 및 판로 지원 등의 행사가 진행됩니다. 소상공인의 날 지정은 대한민국 경제에서 소규모 사업체가 가지는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경영 환경 조성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날을 통해 국민들은 소상공인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재확인하고, 소상공인 제품 및 서비스 이용을 장려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 바둑의 날 (대한민국)
    바둑의 날은 한국 바둑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바둑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2018년 제정된 법정 기념일입니다. 1945년 11월 5일, 한국 근대 바둑의 요람이 된 '한성기원'이 문을 연 날을 기념하여 11월 5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바둑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예의, 지혜, 인내심 등 정신적 가치를 함양하는 교육적 기능과 함께 전통문화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바둑의 날에는 한국기원 주최로 기념식이 열리며, 바둑 보급과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포상하고, 바둑 관련 이벤트와 대회 등을 개최합니다. 이는 바둑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바둑을 통한 문화 교류를 활성화하며, 바둑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집니다. 특히 청소년과 일반 대중에게 바둑을 더욱 친숙하게 소개하고, 바둑의 역사와 깊은 철학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행사가 추진됩니다. 바둑의 날 제정은 한국 바둑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한 바를 기념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낼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가이 포크스 나이트 (영국 및 영연방 국가)
    가이 포크스 나이트는 1605년 11월 5일에 발생한 화약 음모 사건이 실패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사건은 로마 가톨릭교도 집단이 프로테스탄트 국왕 제임스 1세를 암살하고 의회를 폭파하려 했던 계획이었습니다. 주모자 중 한 명인 가이 포크스가 폭약을 지키던 중 체포되면서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영국 의회는 국왕의 구출을 신의 은총으로 여겨 이 날을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당시의 법률인 '11월 5일 준수법(Observance of 5th November Act)'에 따라 감사 예배가 의무화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이 날은 가이 포크스 데이, 모닥불의 밤, 불꽃놀이의 밤 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대규모 모닥불을 피우고 폭죽을 터뜨리며 가이 포크스의 인형을 태우는 행사를 통해 이 사건의 실패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전통은 4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영국의 중요한 문화적 행사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반 가톨릭 정서가 강하게 반영되기도 했으나, 현대에는 주로 불꽃놀이를 즐기는 축제의 성격이 강합니다.
  • 구루 나나크 데브 지 탄신일 (인도 외 시크교 공동체)
    구루 나나크 데브 지 탄신일은 시크교의 창시자이자 첫 번째 구루인 구루 나나크 데브 지(Guru Nanak Dev Ji)의 탄생을 기념하는 시크교의 가장 성스러운 명절 중 하나입니다. 이 날은 힌두 달력의 카르틱 월 보름날(Kartik Purnima)에 해당하며, 매년 날짜가 바뀝니다. 구루 나나크 데브 지는 1469년에 현재 파키스탄의 난카나 사히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 단 하나의 신(Ek Onkar)에 대한 믿음, 이기심 없는 봉사(Sewa), 정직한 노동(Kirat Karō), 신의 이름 묵상(Naam Japnā)을 포함하는 시크교의 근본 교리를 전파했습니다. 이 날의 축하 행사는 보통 이틀 전부터 시작되며, 시크교 경전인 구루 그란트 사히브(Guru Granth Sahib)를 48시간 동안 중단 없이 읽는 아칸드 파트(Akhand Path)가 진행됩니다. 탄신일 전날에는 나갈 키르탄(Nagar Kirtan)이라는 종교 행렬이 조직되어 시가 행진이 이루어지며, 당일에는 구르드와라(시크교 사원)에서 기도와 키르탄(찬송가), 랑가르(Langar)라고 불리는 무료 공동 식사가 제공됩니다. 랑가르는 신분, 종교, 배경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시크교의 중요한 실천 중 하나입니다.
  • 콜론 데이 (파나마)
    콜론 데이(Colón Day)는 파나마의 콜론 주(Provincia de Colón)에서 기념하는 중요한 공휴일 중 하나입니다. 이 날은 파나마 공화국의 분리 독립 과정에서 콜롬비아의 군대가 파나마 운하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콜론 지역을 통해 진입하려는 것을 막아냄으로써 독립을 확고히 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합니다. 1903년 11월 3일에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독립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11월 5일은 콜롬비아 정부가 파나마 운하 지역을 재탈환하기 위해 콜론에 병력을 파견했지만, 이 병력이 파나마의 독립 세력과 미국의 지원에 의해 무력화되면서 파나마의 완전한 독립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날입니다. 따라서 11월 5일은 파나마 독립의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간주되며, 콜론 시에서는 대규모 퍼레이드와 축제가 열려 애국심을 고취하고 독립의 역사를 되새깁니다. 콜론 시민들에게는 큰 자부심을 주는 날이며, 이 지역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념일입니다.
  • 세계 쓰나미 인식의 날 (국제/유엔)
    세계 쓰나미 인식의 날(World Tsunami Awareness Day)은 쓰나미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쓰나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기 경보 시스템 및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유엔이 지정한 국제 기념일입니다. 이 날은 2015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11월 5일로 지정된 이유는 1854년 11월 5일 일본의 어촌에서 발생한 역사적인 쓰나미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한 주민이 자신의 논에 불을 질러 마을 사람들에게 곧 닥칠 쓰나미를 경고했고, 이 덕분에 많은 인명을 구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일화는 공동체 내에서의 조기 경고와 대비의 중요성을 상징합니다. 매년 유엔 산하 기구와 각국 정부는 이 날을 맞아 쓰나미 대비 훈련, 교육 프로그램, 인식 캠페인 등을 실시합니다. 특히 해안 지역 주민들의 안전 의식을 높이고, 재난 발생 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는 국제 사회가 자연재해로부터 인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605년 – 화약 음모 사건 (영국)
    1605년 11월 5일, 영국에서 가톨릭교도들이 프로테스탄트 국왕 제임스 1세를 암살하고 의회를 폭파하려 했던 화약 음모 사건이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로버트 캐츠비가 주도한 이 음모는 국왕과 의회 의원들이 상원에 모이는 국회 개원일에 맞춰 의사당 지하에 다량의 화약을 설치하고 폭파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음모에 가담한 가이 포크스는 폭약을 지키고 있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음모가 발각된 경위는 한 익명의 편지가 가톨릭 신자였던 몬티글 경에게 전달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몬티글 경은 이 편지를 국왕에게 알렸고, 국왕의 명령으로 의사당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졌습니다. 수색 결과, 지하에서 가이 포크스와 함께 화약 36통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영국 역사에서 국왕과 의회의 권위를 위협했던 중대한 반역 사건으로 기록되며, 사건의 실패는 매년 '가이 포크스 나이트'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체포된 가이 포크스를 포함한 주모자들은 고문을 받은 후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사건은 영국 내의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 1757년 – 로스바흐 전투 (신성 로마 제국)
    7년 전쟁 중이던 1757년 11월 5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가 이끄는 군대가 로스바흐 전투(Battle of Rossbach)에서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격파했습니다. 이 전투는 현재 독일 작센안할트 주 로스바흐 근처에서 일어났으며, 프로이센군이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동력과 지휘력으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적군이 프로이센군의 후방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자신의 군대를 신속하게 재배치하여 프랑스-신성 로마 제국 연합군을 기습했습니다. 프로이센 기병대는 연합군의 측면을 강타하여 적진을 혼란에 빠뜨렸고, 보병대는 이 혼란을 틈타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전투는 불과 90분 만에 프로이센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으며, 연합군은 엄청난 수의 사상자와 포로를 남기고 패주했습니다. 로스바흐 전투는 프리드리히 2세의 전술적 천재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프로이센이 7년 전쟁에서 계속 버텨나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승리는 유럽 전역에 프로이센의 군사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 1814년 – 포트 이리 폭파 사건 (미국)
    미영 전쟁(War of 1812) 중이던 1814년 11월 5일, 미국 군대는 온타리오 주에 위치한 포트 이리(Fort Erie) 요새를 폭파하고 나이아가라 국경에서 철수했습니다. 미국군은 이 요새를 약 두 달 동안 점령하고 있었으며, 영국군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요새 방어에 상당한 손실을 입은 미국 북부 사령관 조지 이자드 소장은 더 이상의 무의미한 희생을 피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병력을 안전하게 철수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군은 철수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영국군이 사용할 수 없도록 포트 이리를 파괴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요새 내부에 다량의 화약을 설치하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폭파시켰습니다. 이 폭발로 인해 요새는 심하게 손상되었고, 영국군이 즉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포트 이리 폭파는 미국이 나이아가라 국경에서의 공세를 사실상 포기하고 방어 태세로 전환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영 전쟁은 대체로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으며, 이듬해 겐트 조약 체결로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 1854년 – 인케르만 전투 (크림 전쟁)
    크림 전쟁 중이던 1854년 11월 5일, 러시아군이 세바스토폴 공성전을 벌이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을 기습 공격하면서 인케르만 전투(Battle of Inkerman)가 발생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안개 낀 새벽을 틈타 연합군의 병력이 분산되어 있는 틈을 노려 기습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특히 영국군의 우익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전세를 뒤집으려 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영국군은 처음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필사적인 방어와 프랑스군의 적절한 증원으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전투는 짙은 안개와 험준한 지형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로 인해 지휘 체계에 혼란이 발생하고 소규모 부대 간의 백병전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연합군과 러시아군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러시아군의 공격은 저지되었습니다. 인케르만 전투는 연합군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으며, 이 승리로 세바스토폴에 대한 연합군의 포위망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이 전투는 크림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로, 양측 모두에게 심각한 손실을 안겨주었습니다.
  • 1872년 – 수전 B. 앤서니의 투표 (미국)
    1872년 11월 5일, 미국의 저명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수전 B. 앤서니(Susan B. Anthony)가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했습니다. 당시 미국 헌법은 여성의 투표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투표 행위는 여성 참정권에 대한 시민 불복종의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앤서니는 미국 수정헌법 제14조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보호를 보장하므로,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투표 직후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00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습니다. 앤서니는 이 벌금 납부를 거부했지만, 당국은 그녀를 투옥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투표와 그에 따른 재판은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며, 그녀의 용감한 행동은 결국 1920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의 노력은 미국 여성의 정치적 권리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05년 – 경의선 철도 일반 영업 시작 (대한제국)
    1905년 11월 5일, 대한제국에서 경의선 철도(용산-신의주 구간)의 일반 영업 수송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의선은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주요 간선 철도로,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직후 일본 제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을 서둘렀습니다. 이미 1905년 4월에 군용 수송이 시작되었으며, 11월 5일에 일반 여객 및 화물 수송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 구간 개통**은 주요 교량 공사 완료 후인 **1906년 4월 3일**에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철도는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한반도의 자원 수탈과 병력 수송의 핵심 통로로 활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졌습니다. 경의선 개통은 한반도 내륙 지역의 경제 구조와 사회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해방 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단절되었습니다.
  • 1940년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3선 성공 (미국)
    1940년 11월 5일,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공화당 후보 웬델 윌키(Wendell Willkie)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나,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국제 정세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루스벨트의 3선 성공은 그의 뉴딜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불안정한 국제 상황에서 유능하고 경험 많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작용한 결과로 분석됩니다. 이전까지 미국의 대통령들은 조지 워싱턴의 전례를 따라 2선까지만 역임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나, 루스벨트는 비상 상황을 이유로 3선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그는 이듬해에도 4선에 성공했으나, 임기 중 사망했습니다. 그의 3선 성공은 미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이후 1951년에는 대통령의 임기를 2회로 제한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22조가 비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1974년 – 제1땅굴 발견 (대한민국)
    1974년 11월 5일, 대한민국 육군이 군사분계선(MDL) 남쪽 1.2km 지점인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코앞리에서 북한이 남침용으로 굴착한 땅굴인 '제1땅굴'을 발견했습니다. 이 땅굴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기습 공격할 목적으로 비밀리에 굴착한 것으로, 높이 1.2m, 폭 0.9m의 아치형 구조였습니다. 당시 북한은 땅굴을 파면서 파낸 흙을 위장하기 위해 땅굴 내부 벽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하는 등 치밀한 은폐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제1땅굴은 북한이 남침을 위해 계획적으로 준비한 지하 시설의 실체를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였습니다. 땅굴 발견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대한민국 군 당국은 전방 지역에 대한 땅굴 탐지 및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총 4개의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제1땅굴은 안보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남북 분단 현실과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 1991년 – 태풍 텔마로 인한 오르모크 대홍수 (필리핀)
    1991년 11월 5일, 필리핀 레이테섬의 오르모크 시(Ormoc City)에 태풍 '텔마(Thelma)'가 강타하면서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태풍 텔마는 필리핀 현지에서는 '우링(Uring)'으로 불렸으며, 기록적인 폭우를 동반했습니다. 오르모크 시는 주변 산림이 무분별하게 벌채되어 홍수 방지 능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으며, 짧은 시간 동안 쏟아진 폭우로 인해 산비탈의 흙과 물이 도시로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왔습니다. 이로 인해 오르모크강이 범람하고 시가지 전체가 진흙탕에 잠기면서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재해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4,9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실종자를 포함하면 그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르모크 대홍수는 필리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홍수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자연재해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전 세계적으로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이후 재난 대비 시스템을 강화하고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 1995년 – 장 크레티앵 캐나다 총리 암살 미수 사건 (캐나다)
    1995년 11월 5일, 캐나다의 제20대 총리였던 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을 겨냥한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앙드레 달레르(André Dallaire)라는 남성이 새벽 시간대에 오타와에 위치한 총리 관저에 침입하려 했습니다. 달레르는 관저의 문을 부수고 침입했으나, 총리 부인인 알린 크레티앵 여사가 침입자를 발견하고 즉시 문을 잠가 총리의 침실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했습니다. 이후 장 크레티앵 총리가 사냥용 트로피로 침입자를 위협했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달레르가 체포되었습니다. 달레르는 체포 당시 총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총기를 발사하지는 않았습니다. 달레르는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재판에서 총리 암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으나, 정신 이상을 이유로 유죄 평결은 보류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캐나다 총리 관저의 보안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후 캐나다 정부는 총리 및 주요 인사에 대한 경호 및 관저 보안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캐나다 역사상 총리를 직접 겨냥한 드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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