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기념일
- 국제 미망인의 날 (국제)
유엔이 2011년에 지정한 기념일입니다. 전 세계 미망인이 겪는 빈곤·차별 문제를 조명하고 지원 정책을 촉구합니다. 각국 시민 단체는 상담 확대와 후원 모금을 진행합니다. - 유엔 공공 서비스의 날 (국제)
유엔 총회가 2002년에 제정한 날입니다. 회원국은 혁신적인 행정 서비스 사례를 공유하고 우수 기관을 시상합니다. 2025년 포럼은 사마르칸트에서 열립니다. - 국제 올림픽의 날 (국제)
1894년 IOC 창설을 기념하여 1948년부터 운영 중입니다. 각국 올림픽위원회가 달리기·체험 행사를 열어 참여를 독려합니다. 2025년 슬로건은 “Let’s Move Together”입니다. - 세계 여성 공학의 날 (국제)
2014년 영국 여성공학회가 시작한 글로벌 캠페인입니다. 산업계와 대학은 여성 인재 확대 통계를 발표하고 멘토십을 제공합니다. 올해 공식 해시태그는 #INWED25입니다. - 수분 섭취의 날 (미국)
2016년에 제정되어 여름철 탈수를 예방하는 공중보건 행사를 진행합니다. 학교와 병원은 무료 물병을 배포하며 올바른 수분 섭취 방법을 안내합니다. 스포츠 단체는 체액 균형 교육 영상을 제공합니다. - 타자기의 날 (미국)
1868년 6월 23일 타자기 특허 발급을 기념합니다. 박물관과 서점은 타이핑 체험 행사를 마련하고 역사 강연을 진행합니다. 애호가 모임은 속기 대회를 개최하여 문화유산을 소개합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314 – 배녹번 전투 개시 (스코틀랜드)
로버트 브루스가 지휘한 스코틀랜드군이 잉글랜드 군과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전투는 이틀간 이어져 독립 전쟁의 전세를 가름했습니다. 승리로 브루스의 국왕 지위가 확고해졌습니다. - 1757 – 플라시 전투 (인도)
영국 동인도회사가 벵골 나와브 군을 격파했습니다. 승리로 벵골 지배권을 확보하고 식민 통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전투는 7년 전쟁의 아시아 전선과 연결됩니다. - 1758 – 크레펠트 전투 (신성 로마 제국)
7년 전쟁 서부 전선에서 프로이센·하노버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쳤습니다. 전투는 라인란트 방어선을 안정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승리는 연합군 사기를 높이고 프랑스군을 후퇴시켰습니다. - 1868 – 타자기 특허 등록 (미국)
슐즈‧글리든‧소울이 실용 타자기 특허를 받았습니다. 특허 번호 79 265는 QWERTY 자판 배열의 시초로 평가됩니다. 이후 레밍턴 1호기가 상용화되어 관공서와 신문사에 보급되었습니다. - 1894 – 국제올림픽위원회 창설 (프랑스)
파리 소르본 회의에서 근대 올림픽 부활 결의가 채택되었습니다. 12개국 대표 79명이 국제 조직 설립에 동의했습니다. 데메트리오스 비켈라스가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40 – 히틀러 파리 시찰 (독일·프랑스)
프랑스 정전 협정 다음 날 히틀러가 파리를 세 시간 동안 둘러봤습니다. 동행자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와 조각가 아르노 브레커였습니다. 이 방문은 히틀러의 유일한 파리 체류 기록입니다. - 1947 – 타프트-하틀리 법안 재의결 (미국)
미 의회가 대통령 거부권을 무효화하고 노동관계조정법을 발효시켰습니다. 법은 파업 제한과 노조 재정 공개 규정을 포함했습니다. 이후 미국 노동법 체계에 장기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 1956 –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 선출 (이집트)
국민투표에서 99.95 % 찬성으로 초대 대통령이 확정되었습니다. 동시에 단일 정당 헌법이 승인되어 권력 구조가 고정되었습니다. 이는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1972 – 타이틀 IX 교육 개정법 서명 (미국)
닉슨 대통령이 연방 지원 교육기관의 성차별 금지 조항에 서명했습니다. 규정은 여성 체육과 장학금 확대를 촉진했습니다. 조항은 현재까지 미국 교육 평등 정책의 핵심 근거입니다. - 1985 –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캐나다·아일랜드)
보잉 747기가 아일랜드 연안 상공에서 폭발해 329명이 사망했습니다. 캐나다 조사당국은 시크 분리주의자들의 폭발물 테러로 결론지었습니다. 사건은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항공 테러입니다. - 2016 – 영국 EU 탈퇴 국민투표 (영국)
투표 결과 51.9 %가 탈퇴, 48.1 %가 잔류를 선택했습니다. 결과 발표 직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투표는 2020년 브렉시트 공식 발효로 이어졌습니다.
🔎 사건 들여다보기
영국 EU 탈퇴 국민투표
2013년 1월 – 국민투표 공약 발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유럽 회의론 확산에 대응해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라고 공약했습니다.
공약 발표로 국민투표가 공식 의제에 올랐고, 보수당 내부의 탈퇴 지지 세력이 결집했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법적 구속력은 없었지만, 향후 입법 절차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015년 5월 – 총선 승리와 국민투표법 추진
보수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하자 정부는 ‘유럽연합 국민투표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습니다.
법안은 554대 53으로 통과되어 국민투표 실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질문·절차를 감독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2015년 12월 – 국민투표법 왕실 재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2월 17일 법안에 서명해 법률이 발효되었습니다.
정부는 투표일·문구를 명령령으로 지정할 권한을 얻었고, 질문은 잔류·탈퇴 양자택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중앙·지방 선거 관리 일정이 공식화되었습니다.
2016년 2월 – EU 재협상 합의와 공식 캠페인 개시
영국 정부는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이민·복지·주권 분야 양보 안을 확보했습니다.
합의 직후 캐머런 총리는 잔류 지지를 선언하고 일부 장관은 탈퇴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4월 15일 ‘Vote Leave’와 ‘Britain Stronger in Europe’를 공식 단체로 지정했으며, 6월 23일까지 10주 캠페인이 진행되었습니다.
2016년 6월 23일 – 국민투표 실시
영국 본토와 지브롤터 382개 개표구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투표율은 72.2 %로 1992년 총선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우편투표를 포함한 개표는 자정을 넘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2016년 6월 24일 – 개표 결과 발표·총리 사임 선언
새벽 4시경 개표 집계가 탈퇴 우세로 굳어졌고, 오전 7시 20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종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탈퇴 51.9 %, 잔류 48.1 %로 확정되자 파운드화가 즉시 급락하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었습니다.
오전 8시 20분경 캐머런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10월 보수당 대회 전 사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17년 3월 – 리스본조약 50조 발동 통보
테리사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 이사회에 서한을 전달해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했습니다.
통보와 동시에 조약 50조가 규정한 최대 2년 협상 시계가 가동되었습니다.
양측은 우선순위 의제와 협상 일정표를 교환하여 실무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2019년 10월 – 수정 탈퇴협정 합의
보리스 존슨 내각은 북아일랜드 국경 해법을 조정한 탈퇴협정에 EU와 합의했습니다.
새 합의안은 북아일랜드를 단일 관세 구역에 두되 의회 동의 절차를 포함했습니다.
정상회의는 협정을 승인했지만 영국 하원 비준은 총선 일정과 겹치며 연기되었습니다.
2020년 1월 31일 – 브렉시트 공식 발효
영국은 브뤼셀 시간 23시, 런던 시간 0시에 EU 회원국 지위를 종료했습니다.
탈퇴협정으로 11개월간 ‘전환 기간’이 시작되어 관세·규제 체계가 일시 유지되었습니다.
EU 기구는 영국 국기를 철거하고 기관 내 영국 인력 지위 변경 절차를 안내했습니다.
2020년 12월 31일 – 전환 기간 종료·완전 분리
전환 기간이 만료되면서 영국은 단일시장·관세동맹에서 완전히 이탈했습니다.
양측은 7일 전 체결한 ‘EU·영국 미래관계협정’을 임시 적용해 무관세·무쿼터 교역을 지속했습니다.
이 시점을 기해 브렉시트 절차는 법·제도·무역 측면에서 사실상 완결되었습니다.
주요 인물 요약
데이비드 캐머런은 국민투표 공약과 시행을 주도했으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테리사 메이는 50조 통보와 협상 개시를 진행했으나 의회 비준 난항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보리스 존슨은 수정 협정을 타결하고 공식 탈퇴·전환 기간 종료를 마무리했습니다.
핵심 협상 쟁점
협상은 이탈 비용, 북아일랜드 국경, 어업권, 서비스 규제에서 가장 긴 교착을 겪었습니다.
특히 국경 문제는 평화협정과 단일시장 규칙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 관세 구역’ 모델로 절충되었습니다.
어업권은 최종 합의 직전까지 남아 있었으며, 연례 재협상을 조건으로 협정에 포함되었습니다.
경제 지표 변동
국민투표 직후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약 8 % 하락했고 FTSE100 지수는 단기 급락 후 2주 만에 회복했습니다.
2019년 협상 지연기에 투자 지표와 제조업 PMI가 동반 하락하며 경기 둔화 우려가 확산했습니다.
2021년 협정이 임시·정식 적용된 뒤 환율과 주가 변동성은 이전보다 완화되었습니다.
여론 추이
2016년 이후 다수 여론조사에서 “재투표 시 잔류” 응답이 탈퇴 응답을 소폭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YouGov 평균치는 잔류 57 %, 탈퇴 43 %로 나타났으나 지역·세대 격차는 여전히 컸습니다.
재합류 필요성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려 정치·사회적 분열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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