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기념일
- 세계 열대우림의 날 (국제)
2017년 환경단체 주도로 제정된 기념일입니다. 열대우림 보전과 생물 다양성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국제 캠페인이 매년 시행됩니다. 각국 정부·NGO가 재식림 및 교육 프로그램을 전개합니다. - 반 파시스트 투쟁의 날 (크로아티아)
1941년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나치 점령에 맞서 봉기한 날을 기념합니다. 크로아티아 정부가 애국광장에서 공식 추도식을 거행합니다. 전시 희생자 추모와 반파시즘 교육이 병행됩니다. - 위대한 애국전쟁 희생자 추모의 날 (벨라루스)
독일의 소련 침공이 시작된 1941년 6월 22일을 추모하는 국가 공휴일입니다. 정부·시민 단체가 전역 추모비에 화환을 헌정합니다. 학교와 언론이 전쟁 피해 기록을 교육 자료로 활용합니다. - 교사의 날 (엘살바도르)
전직 교사이자 대통령이었던 프란시스코 메넨데스가 순국한 1890년 6월 22일을 기념합니다. 1928년 법령으로 제정된 이후 모범 교사 표창이 실시됩니다. 교육부는 교원 처우 개선 현황을 발표합니다. - 윈드러시 데이 (영국)
1948년 HMT Empire Windrush호 입항을 기념합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카리브계 공동체의 공헌을 조명합니다. 문화 행사와 전시가 전국적으로 열립니다. - 초콜릿 에클레어의 날 (미국)
제과업계가 지정한 비공식 기념일입니다. 베이커리들이 한정판 제품과 할인 행사를 진행합니다. 레시피 공모전으로 소비자 참여를 독려합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기원전 217 – 라피아 전투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셀레우코스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전투 결과로 코엘레시리아 지배권을 유지했습니다. 헬레니즘 국가 간 세력 균형이 재조정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기원전 168 – 피드나 전투 (로마)
로마 공화국이 마케도니아 왕국을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제압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는 패배 후 해체되었습니다. 로마는 그리스 세계에 대한 우위를 확립했습니다. - 1476 – 모라 전투 (스위스)
스위스 연방군이 부르고뉴 공 샤를을 격퇴하여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부르고뉴군은 대규모 전사자를 기록했습니다. 승전은 스위스 용병의 명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1633 – 갈릴레오 판결 선고 (교황령)
로마 종교재판소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가택연금을 명령했습니다. 판결은 지동설 지지를 철회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이후 갈릴레오는 피렌체 외곽 자택에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 1815 – 나폴레옹 2차 퇴위 (프랑스)
워털루 패배 후 나폴레옹 1세가 황제 직을 다시 사임했습니다. 입헌군주파는 루이 18세 복위를 추진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곧 영국에 항복하여 세인트헬레나 유배가 결정되었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40 – 프랑스-독일 정전협정 조인 (프랑스)
콩피에뉴 숲 전차 객차에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항복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협정은 북·서부 프랑스를 점령 지역으로 규정했습니다. 비시 정부가 잔여 지역 통치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 1941 –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독일)
나치 독일이 소련을 향해 3,000,000명 규모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침공은 동부전선 전투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군사 역사상 최대 규모 지상 작전으로 평가됩니다. - 1944 – GI 법 서명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전역 군인을 위한 교육·주택 지원법에 서명했습니다. 제도는 1950년대 고등교육 인구 확대와 중산층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이후 개정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1945 – 오키나와 전투 종료 (일본)
제10미군 사령부가 남단 마부니 일대에서 최종 작전을 완료했습니다. 사상자는 양측 합해 200,000명 이상입니다. 승전은 일본 본토 상륙 계획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 2002 – 부인자흐라 지진 (이란)
카즈빈주 아바즈 인근에서 모멘트 규모 6.5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261명이 사망하고 1,500명이 부상했습니다. 약 50,000명이 일시적으로 주거를 잃었습니다.
🔎 사건 들여다보기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 배경
독일은 1939 년 8 월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으나, 1940 년 프랑스 점령 이후 장기전을 피하려고 소련 선제 침공을 검토했습니다. 히틀러는 소련을 단기간에 붕괴시키면 영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940 년 12 월 18 일, 국방지령 21호(바르바로사)가 하달되면서 침공 계획이 공식화됐습니다.
■ 준비
독일군은 침공 축선을 세 갈래로 구분했습니다. 북방집단군은 레닌그라드,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 남방집단군은 우크라이나를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독일 153개 사단과 루마니아·핀란드 부대를 포함해 총 300만 명 이상의 병력이 배치됐습니다.
■ 침공 개시 — 1941 년 6 월 22 일 03:15
6 월 22 일 새벽, 독일 공군은 소련 서부의 비행장과 철도 거점을 폭격했습니다. 이어 기갑·기계화 부대가 2,900 km 전선에서 동시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소련 서부 전선 지휘망은 오전 중 크게 손상됐습니다.
■ 북방집단군 진격
북방집단군은 발트 3국을 관통해 7월 1 일 리가를 점령했습니다(침공 9일 만). 같은 기간 핀란드는 ‘재계전’을 선포하고 카렐리아 지협으로 남하했습니다. 7월 중순에는 레닌그라드 남서쪽 약 150~200 km 지점까지 접근했습니다.
■ 중부집단군 진격
중부집단군은 브레스트요새를 우회해 민스크 양면 포위를 형성했고, 6 월 28 일 민스크를 함락했습니다. 기갑집단은 드나프로강까지 전진해 모스크바 300 km권에 도달했습니다.
■ 남방집단군 진격
남방집단군은 리보프―키예프 축에서 소련 남서부 전선과 교전했습니다. 대규모 전차전이 이어졌고, 루마니아군은 7 월 1 일 프루트강을 넘어 바사라비아를 재점령했습니다.
■ 소련의 초기 대응
소련 최고사령부는 6 월 23 일 총동원령을 발령해 신규 야전군을 편성했습니다. 산업 설비는 6 월 말부터 이전 준비에 들어갔으며, 8 월에 본격적 이전이 시작됐습니다. 스몰렌스크 전투(7 월 10 일~9 월 10 일)에서 지연전을 실시해 방어선을 재정비했습니다.
■ 결과와 영향
침공 후 처음 3개월 동안 독일군은 약 700 km를 진격했으나 결정적 승리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소련은 병력과 공업력을 동원해 장기전을 준비했습니다. 작전 개시는 동부전선 4년 전면전을 촉발했고, 최종적으로 독일 전략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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