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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11월 30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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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와일드

📌 오늘의 기념일

  • 바베이도스 독립기념일 (바베이도스)
    1966년 11월 30일, 카리브해 동부에 위치한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나라는 17세기부터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아왔으며,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탕수수 재배를 기반으로 한 플랜테이션 경제가 발달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바베이도스에서도 독립 움직임이 구체화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내부 자치권을 획득하였고, 이후 완전한 독립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여 1966년 11월 30일에 영연방 내의 독립국으로 공식 출범하였습니다. 이 독립은 평화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에롤 배로(Errol Barrow)가 초대 총리로 취임하였습니다. 바베이도스는 독립 후에도 안정적인 정치 체제와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카리브해 지역에서 비교적 부유하고 발전된 국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1년에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하였으나, 독립기념일은 변함없이 11월 30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전국적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 퍼레이드, 축제, 문화 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 생명의 도시의 날 (Cities for Life Day) (국제)
    생명의 도시의 날은 사형제를 폐지하고 생명 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정된 국제 기념일입니다. 1786년 11월 30일,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이었던 페터 레오폴트 요세프(훗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사형제 폐지를 선언한 것을 기념하여 이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가톨릭 공동체인 산 에지디오(Sant'Egidio)가 주도하여 200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사형제가 존재하는 모든 국가에서 사형 집행을 중단하고 궁극적으로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할 것을 촉구하는 국제적인 운동의 날입니다. 매년 11월 30일이 되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전 세계 수백 개의 도시들이 주요 건축물에 불을 밝히거나 특별 행사를 개최하여 사형 폐지를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날은 단순히 형벌로서의 사형제 폐지를 넘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모든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토스카나 대공국의 사형제 폐지 선언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중요한 인권 선언으로 평가되며, 오늘날 전 세계적인 사형제 폐지 운동의 역사적 기원이 되었습니다.
  • 안드레아 성인의 날 (Saint Andrew's Day) (스코틀랜드 등)
    안드레아 성인의 날은 기독교의 성인 중 한 명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첫 제자였던 안드레아 성인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안드레아 성인은 스코틀랜드, 그리스, 러시아, 루마니아 등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날이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드레아는 베드로의 형제였으며,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십자가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는데, 그리스 십자가와 비슷한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지며, 이 X자 십자가는 스코틀랜드의 국기인 '솔타이어(Saltire)'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이 날은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하고 스코틀랜드 문화를 기념하는 중요한 축제일입니다. 성 안드레아 축일에는 전통 의상을 입고 킬트 차림으로 춤을 추거나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등 스코틀랜드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이 날은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스코틀랜드 후손들이 함께 모여 축하하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 보니파시오의 날 (Bonifacio Day) (필리핀)
    보니파시오의 날은 필리핀의 독립 영웅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és Bonifacio)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필리핀의 공휴일 중 하나입니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1863년 11월 30일에 태어났으며, 스페인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필리핀 독립 혁명을 이끈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필리핀의 독립을 목표로 한 비밀 결사 조직인 '카티푸난(Katipunan)'을 창설하고 지도하며, 스페인에 대한 무력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보니파시오는 비록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으며, 특히 프랑스 혁명 등 서구의 혁명 사상에 영향을 받아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지도력 아래 카티푸난은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며 혁명의 불씨를 지폈으나, 이후 내부적인 분열과 경쟁 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해 1897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필리핀에서는 호세 리살과 함께 보니파시오를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하며, 그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인 11월 30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날은 보니파시오의 고향인 마닐라 칼루칸을 비롯한 필리핀 전역에서 추모식과 기념 행사가 열리며, 필리핀 사람들의 애국심과 독립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됩니다.
  • 순국자의 날 (Martyrs' Day) (아랍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UAE)의 순국자의 날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 순국자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 날은 특히 1971년 11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연방이 결성되기 직전에 아부 무사 섬에서 이란군과의 교전 중 순국한 살렘 수하일 빈 하미스 알 카비(Salem Suhail bin Khamis Al Kaabi)를 비롯하여,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군인, 경찰, 민간인 등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되었습니다. 알 카비는 UAE 연방군 소속이었으며, 이란군이 아부 무사 섬에 상륙하려 할 때 이에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희생은 UAE 역사상 첫 번째 순국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국자의 날은 2015년 8월 19일 UAE 대통령 셰이크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명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정되었으며, 매년 11월 30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날에는 국립 기념비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추모 행사가 거행되며,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의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되새기는 중요한 날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미국 독립 전쟁 예비 평화 조약 서명 (미국/영국)
    1782년 11월 30일, 미국 독립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예비 평화 조약안이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과 영국의 대표자들 사이에 서명되었습니다. 이 예비 조약은 전쟁의 주요 참가국이었던 영국과 미국 간의 기본적인 합의를 담고 있으며, 이후 1783년 9월 3일에 정식으로 서명된 파리 조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존 제이 등이 협상에 참여하였고, 영국 측에서는 리처드 오스왈드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 예비 조약의 주요 내용은 영국이 미합중국 13개 식민지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미합중국의 영토 경계를 미시시피강까지 확장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서명은 미국이 독립 국가로서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으며, 영국에게는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통치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역사적 순간을 의미했습니다. 이 조약은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별도 조약 협상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786년 – 사형제 폐지 선언 (토스카나 대공국)
    1786년 11월 30일,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공이었던 페터 레오폴트 요세프가 통치하던 토스카나 대공국(이탈리아 중부에 위치)에서 사형제가 역사상 근대 국가 중 최초로 폐지되었습니다. 페터 레오폴트는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아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며, 당시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고문이나 사형과 같은 잔인한 형벌의 비인간성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법전 개혁을 단행하면서 형법 분야에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냈는데, 이것이 바로 '레오폴디나 법전'으로 알려진 새로운 법령입니다. 이 법령을 통해 사형과 함께 고문도 폐지되었으며, 죄수들을 위한 인간적인 처우가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사형제 폐지 결정은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근대적 사법 제도의 시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집니다. 비록 이후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인해 잠시 사형제가 부활하는 시기도 있었으나, 이 선언은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 폐지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으며, 매년 11월 30일은 '생명의 도시의 날'로 지정되어 이 역사적 결정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페터 레오폴트 요세프는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2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 1853년 – 시노프 해전 발발 (러시아/오스만 제국)
    1853년 11월 30일, 크림 전쟁(1853년~1856년)의 주요 전투 중 하나인 시노프 해전이 흑해 연안의 오스만 제국 항구인 시노프(현재 튀르키예 시노프)에서 발발했습니다. 이 해전은 러시아 제국 함대가 오스만 제국 함대를 거의 궤멸시킨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러시아 제독 파벨 나히모프가 이끄는 러시아 흑해 함대는 시노프 항구에 정박 중이던 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러시아 해군은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폭발성 포탄을 사용하여 오스만 함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오스만 함대는 총사령관 오스만 파샤가 이끌었으나, 러시아 해군의 강력한 화력과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로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해군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러시아는 흑해에서의 해상 우위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는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영국과 프랑스에게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해야 한다는 위협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결국 시노프 해전은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기 위해 크림 전쟁에 참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전쟁의 양상을 크게 변화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1872년 – 최초의 국제 축구 경기 개최 (스코틀랜드/잉글랜드)
    187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해밀턴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에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인 국제 축구 경기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경기는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와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주관으로 열렸으며, 당시 약 4,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했습니다. 이전에도 비공식적인 '국제' 경기가 몇 차례 있었으나, 이 경기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최초의 국제 A매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경기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규칙을 따랐으며, 각 팀은 11명의 선수로 구성되었습니다. 경기는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0대 0 무승부로 종료되었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 팀은 글래스고의 클럽인 퀸즈 파크(Queen's Park F.C.) 선수들로만 구성되었고, 잉글랜드 팀은 여러 클럽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경기는 축구가 단일 국가의 스포츠를 넘어 국제적인 스포츠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이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축구 경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 매치 중 하나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1883년 – 서력기원 공식 도입 (대한제국)
    1883년 11월 30일, 조선(훗날 대한제국)에 **서력기원(西曆紀元)**, 즉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하는 기원(A.D., C.E.)이 공식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서구 열강과의 외교 및 통상 관계가 증가하면서, 서양 국가들과의 문서 작성 및 시간 표기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전통적인 **개국기원**이나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국제적인 표준에 맞추려는 근대화 노력의 일환으로 서력기원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정부의 관보 등을 통해 서력기원이 소개되었고, 이후 점진적으로 정부 문서와 외교 분야에서 서력기원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일반 백성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달력과 연호가 오랫동안 사용되었지만, 서력기원의 공식 도입은 조선이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 사회로 편입되려는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훗날 대한제국 수립 후 1896년 1월 1일 고종의 칙령으로 **태양력**과 함께 서력기원(건양 연호와 병행)이 공식적으로 채택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 1900년 – 오스카 와일드 사망 (프랑스)
    1900년 11월 30일, 아일랜드 출신의 저명한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프랑스 파리에서 46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말 영국 문학의 심미주의(Aestheticism)를 대표하는 인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관념에 도전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희곡 《살로메》,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리고 유명한 동화 《행복한 왕자》 등이 있습니다. 그는 재치 있는 역설과 풍자로 가득 찬 대화, 독특한 스타일로 당대 사교계와 문학계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1895년, 그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2년간의 강제 노동형에 처해지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감옥에서의 경험은 그의 후기 작품인 시 《레딩 감옥의 노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출소 후 건강과 명예를 잃은 그는 영국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파리의 한 허름한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사망은 빅토리아 시대 말기 한 천재 작가의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나, 오늘날 그의 작품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위대한 문학적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39년 – 겨울 전쟁 발발 (소련/핀란드)
    1939년 11월 30일, 소련(소비에트 연방)이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겨울 전쟁(Winter War, 핀란드어: Talvisota)**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직후에 일어났으며, 소련은 핀란드에 전략적 요충지인 카렐리야 지협의 영토를 포함한 국경 조정을 요구했으나 핀란드가 이를 거부하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소련군은 병력과 무기 면에서 핀란드군을 압도했으나, 핀란드군은 혹독한 겨울 날씨와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고 게릴라 전술인 '모티 전술(Motti Tactics)'을 구사하며 소련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핀란드군은 병력과 장비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인 저항을 통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수적 열세를 끝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1940년 3월에 모스크바 평화 조약에 서명하며 전쟁은 종식되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핀란드는 요구된 영토의 일부를 소련에 할양해야 했지만,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 전쟁은 소련군이 보여준 비효율적인 작전 수행 능력과 약점을 국제 사회에 노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 1966년 – 바베이도스 독립 (바베이도스)
    1966년 11월 30일, 카리브해 동부의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달성했습니다. 바베이도스는 17세기 초부터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어 약 300년 이상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사탕수수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플랜테이션 경제가 중심이었으며, 서인도 제도의 다른 섬들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와 높은 교육 수준을 유지해왔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적인 탈식민지화 흐름에 따라 바베이도스에서도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가속화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내부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 에롤 배로(Errol Barrow)가 이끄는 민주노동당이 독립을 위한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966년 11월 30일, 바베이도스는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의 일원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자체적인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이 독립은 비교적 평화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바베이도스는 독립 후에도 관광업과 금융업을 육성하며 카리브해 지역의 경제 선진국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2021년에는 영국 군주를 국가 원수로 하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하였으나, 독립을 기념하는 날짜는 11월 30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 1968년 – 서울 전차 운행 전면 중단 (대한민국)
    1968년 11월 30일, 서울 시내에서 약 70년간 운영되던 **전차(電車)**의 운행이 이날을 마지막으로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서울 전차는 1899년 5월, 대한제국 시기 서대문과 청량리를 잇는 노선을 시작으로 운행을 개시하여, 서울의 대중교통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전차는 개통 당시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도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도시화와 차량 증가로 인해 교통 체증이 심화되었고, 노면을 점유하는 전차는 비효율적인 교통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전차 시설의 노후화 문제와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인 시내버스의 발전도 전차의 폐지를 가속화했습니다. 결국 서울시는 도시 교통난 해소와 지하철 건설 계획에 따라 전차의 운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차가 폐지되면서 서울의 대중교통은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전까지 약 6년 동안 시내버스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전차의 폐지는 서울의 근대사를 마감하고 현대적인 도시 교통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 1980년 – 언론 통폐합 단행 (대한민국)
    1980년 11월 30일, 대한민국에서 **언론 통폐합** 조치가 단행되었습니다. 이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이후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이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추진한 조치였습니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허문도 등의 주도로 진행된 이 통폐합은 언론사의 수를 대폭 줄이고 방송사들을 공영 체제로 강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했습니다. 이 날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DBS)** 등의 민간 방송사들이 강제로 폐국하고 공영 방송인 KBS에 흡수 통합되었습니다. 신문사들의 통신사 소유를 금지하여 합동통신이 연합통신으로 통폐합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지방지들이 통폐합되어 '1도 1사' 체제로 강제 개편되었습니다. 신군부는 이 조치를 '언론의 비능률과 상업주의 해소'라는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하여 정권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언론사에 자유와 독립성이 침해된 어두운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1982년 –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 발매 (미국)
    1982년 11월 30일, 미국의 팝 가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Thriller》**가 전 세계에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평가되며, 상업적으로도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Thriller》는 팝, 록, R&B, 포스트 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여 음악적 경계를 허물었으며, 앨범에 수록된 9곡 중 〈Billie Jean〉, 〈Beat It〉, 〈Thriller〉를 포함한 7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뮤직비디오를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Thriller〉의 14분짜리 단편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는 MTV와 대중문화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앨범은 인종의 장벽을 넘어선 음악으로 인정받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수억 장이 판매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Thriller》의 발매는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로 등극시켰고, 1980년대 대중음악과 뮤직비디오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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