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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기념일
- 알바니아 해방의 날 (알바니아)
1944년 11월 29일은 알바니아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나치 점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알바니아에서는 이 날을 **'해방의 날'(Dita e Çlirimit)**이라고 부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은 1939년 알바니아를 침공하여 합병하였습니다. 이후 1943년에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하자 독일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하였습니다. 이에 알바니아 공산당 지도자 엔베르 호자가 이끄는 **알바니아 인민해방군**이 조직되어 독일 점령군에 대항하는 치열한 게릴라 투쟁을 벌였습니다. 인민해방군은 소련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원을 받으며 전국적으로 해방 투쟁을 전개하였고, 1944년 가을 독일군이 발칸 반도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수도 티라나를 비롯한 전 지역을 해방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1월 29일은 마지막 독일군이 알바니아 북부 도시 슈코더르를 포함한 알바니아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한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알바니아 인민해방군은 이 날의 승리를 통해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기념일은 알바니아 국민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의 정신**을 되새기고,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이 날은 알바니아의 현대사에서 국가 정체성과 주권을 회복한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알바니아 전역에서는 각종 기념행사와 퍼레이드가 열리며, 참전 용사들의 공로를 기리고 국가적 단결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팔레스타인 연대 국제의 날 (국제)
유엔(UN)이 1977년에 제정한 기념일로,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채택한 날을 기억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지정되었습니다. 유엔 총회 결의 181호로 알려진 이 분할안은 영국 위임통치령이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나누고 예루살렘은 국제적인 관리 체제 아래 두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아랍 국가들의 거부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발 속에 완전히 이행되지 못하였으며, 결국 이듬해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제1차 중동전쟁(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발발로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중동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국제의 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난과 역경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연대**를 높이고, 그들의 **자결권과 독립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유엔 본부와 각국에서는 이 날을 맞아 특별 회의와 문화 행사를 개최하여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기념일은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현재 진행형인 팔레스타인 분쟁의 인도적, 정치적 측면에 주목하게 하여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수립 선언일 (유고슬라비아)
1945년 11월 29일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수립이 공식적으로 선포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 점령에 맞서 싸운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끈 파르티잔(Partisan) 운동의 정치적 성과를 바탕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폐지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미 1943년 11월 29일, 반(反)파시스트 해방 투쟁 중에 '유고슬라비아 민족해방을 위한 반파시스트 평의회(AVNOJ)'가 보스니아의 야이체에서 열려 왕국의 망명 정부를 부인하고 전후 국가 재건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945년 11월 29일의 선포는 전후 선거를 거쳐 공식적으로 **연방제 공화국**의 형태를 확정한 것으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날은 유고슬라비아의 국민들에게 **독립과 통일, 사회주의 건설**의 정신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국경일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전국적으로 대규모 퍼레이드, 문화 행사, 체육 대회가 열렸으며,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티토의 지도력과 파르티잔의 영웅적인 희생을 교육하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1990년대 초 해체되면서 이 기념일은 더 이상 국경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은 여전히 발칸 반도 현대사에서 **범슬라브 민족의 통합과 분열**이라는 복잡한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상징적인 날로 남아 있습니다. - 국제 펜싱 연맹 창립 기념일 (국제)
1913년 11월 29일, **국제 펜싱 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crime, FIE)**이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연맹은 펜싱이라는 스포츠의 **국제적인 관리, 규정 표준화, 올림픽을 포함한 세계 대회 개최**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창립 당시 국제 펜싱 연맹에는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영국 등 9개 국가의 펜싱 협회가 참여하였으며, 이는 펜싱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근대 스포츠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펜싱은 고대부터 군사 훈련이나 결투의 형태로 존재하였으나, 근대에는 안전 장비의 발달과 규칙의 정립을 통해 스포츠로 발전하였습니다. 국제 펜싱 연맹의 창립은 이러한 펜싱의 **스포츠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준 아래에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이 연맹은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펜싱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기술적인 부분(장비, 심판 판정 등)과 행정적인 부분(경기 운영, 선수 자격 등)을 담당하는 중추적인 기구로 발전하였습니다. 현재 국제 펜싱 연맹은 150개 이상의 회원국을 가진 거대한 스포츠 조직으로 성장하였으며, 매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월드컵 시리즈를 개최하여 전 세계 펜싱 선수들이 기량을 겨룰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기념일은 **펜싱 스포츠의 발전과 국제적인 교류**에 기여한 연맹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날로 여겨집니다. - FC 바르셀로나 창립 기념일 (스페인)
1899년 11월 29일,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에서 스위스 출신의 축구 선수 **호안 감페르(Joan Gamper)**와 그를 포함한 11명의 청년에 의해 **푸트볼 클럽 바르셀로나(Futbol Club Barcelona, FC Barcelona)**가 공식적으로 창단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FC 바르셀로나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이고 인기 있는 축구 클럽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창단 초기부터 FC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스포츠 클럽을 넘어, 카탈루냐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클럽의 모토인 "Més que un club"(클럽 그 이상)은 이러한 정체성을 대변하며, 특히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에는 중앙 정부의 억압에 맞서는 카탈루냐 민중의 **저항 정신**을 표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창단 이후 FC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등 국내 리그는 물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국제 무대에서도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명문 클럽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클럽의 홈 구장인 **캄 노우(Camp Nou)**는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성지로 여겨지며,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이 기념일은 FC 바르셀로나가 걸어온 **영광스러운 역사와 클럽의 가치**를 되새기고, 팬들이 하나 되어 클럽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축제의 날입니다. 창립일은 매년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며, 클럽의 전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다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도플러 효과 발견 기념일 (오스트리아)
1842년 11월 29일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요한 도플러(Christian Johann Doppler)**가 그의 유명한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도플러는 체코 프라하 공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별의 색깔과 이중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 논문에서 **파동을 발생시키는 물체와 그것을 관측하는 관측자의 상대적인 움직임**에 따라 파동의 주파수(또는 파장)가 달라지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구급차가 다가올 때는 사이렌 소리가 높게 들리고 멀어질 때는 낮게 들리는 현상이 도플러 효과의 가장 흔한 예입니다. 소리뿐만 아니라 빛과 같은 전자기파에도 이 현상이 적용됩니다. 도플러 효과는 발표 당시에는 주로 소리나 수면에 국한되어 연구되었으나, 이후 네덜란드의 기상학자 크리스토프 보이스 발롯(Christoph Buys Ballot)의 실험적 검증을 거쳐 확립되었습니다. 이 효과는 현대 과학기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천문학에서는 **별과 은하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우주의 팽창을 증명하는 **허블의 법칙**의 근거가 되었으며, 의료 분야에서는 **초음파 진단 장비**를 통해 혈류 속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기상학에서는 **도플러 레이더**를 이용하여 구름과 강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교통 분야에서는 **속도 측정기**의 원리로 활용됩니다. 이 기념일은 도플러의 획기적인 발견이 현대 과학과 공학에 미친 **지대한 영향과 기여**를 기리는 날입니다. -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국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BND)'은 **지나친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캠페인성 기념일입니다. 북미 지역에서는 추수감사절 다음 날이자 블랙 프라이데이와 겹치는 날에, 국제적으로는 그 다음 날인 11월 29일에 기념되기도 합니다. 이 날은 캐나다의 잡지 '애드버스터즈(Adbusters)'의 편집장 **케이틀린 피츠제럴드(Kalle Lasn)**에 의해 1992년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곧바로 미국과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캠페인의 주요 목적은 무분별한 소비가 초래하는 **환경 파괴, 노동 착취, 사회적 불평등** 등의 문제에 대해 대중이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이 날 하루 동안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 이용을 최대한 자제하며, 대신 재활용, 지역 공동체 활동 참여, 자연과의 교감 등 **비소비적 활동**에 집중할 것을 권장받습니다. 특히 이 날이 연말 쇼핑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대치되는 시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이 캠페인은 상업주의의 홍수 속에서 **개인의 윤리적 선택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 기념일은 지속 가능한 소비 습관과 환경 친화적인 생활 방식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378년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 사망 (신성 로마 제국)
1378년 11월 29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카를 4세(Charles IV)**가 프라하에서 사망하였습니다. 1316년에 태어난 카를 4세는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중세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적인 군주** 중 한 명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1346년에 보헤미아의 왕위에 올랐고, 1355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1356년에 반포한 **'금인칙서(Golden Bull)'**입니다. 이 칙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선출 절차를 확정하고 선제후들의 권한을 명확히 함으로써, 제국의 정치적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본거지인 보헤미아의 프라하를 제국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프라하에 **카를 대학교(Charles University)**를 설립하고, **카를교(Charles Bridge)**와 **성 비투스 대성당**의 건설을 후원하는 등 문화와 예술, 학문의 발전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의 치세는 **보헤미아의 황금기**로 불리며, 프라하는 유럽의 주요 문화 중심지로 번성하였습니다. 카를 4세는 외교적인 수완과 지혜로운 정치로 제국 내의 복잡한 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하였으며, 그의 사망 이후에도 그의 정책과 문화적 유산은 오랫동안 유럽 사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현명한 통치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1544년 – 조선의 국왕 중종 사망 (조선)
1544년 11월 29일, 조선의 제11대 국왕인 **중종(中宗)**이 재위 38년 만에 창경궁 환경전에서 57세를 일기로 승하하였습니다. 중종은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을 통해 폭군이었던 형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치세 초기는 개혁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조광조(趙光祖)**와 같은 신진 사림 세력을 등용하여 **도덕정치와 왕도정치**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중종은 현량과를 설치하여 인재를 공정하게 등용하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보급하려 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인 개혁은 훈구파(勳舊派)의 반발을 샀고, 결국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조광조를 비롯한 많은 사림 세력이 숙청되면서 개혁은 좌절되었습니다. 이후 중종은 훈구파와 외척 세력의 영향력 아래에서 **정치의 불안정**을 겪었으며, 여러 차례의 사화(巳禍, 己卯, 乙巳)가 발생하는 등 혼란스러운 시대를 보냈습니다. 특히 말년에는 왕비였던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 세력의 발호가 심해지면서 국정이 문란해지는 조짐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중종의 통치기는 조선이 훈구파와 사림파라는 두 정치 세력 간의 **첨예한 대립**을 겪으며 근본적인 정치 체제의 변화를 모색하던 과도기적 시점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사망은 이러한 불안정한 정국을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 1777년 – 산호세 시(市) 창립 (스페인령 캘리포니아/미국)
1777년 11월 29일,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산호세(San José)**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민간 정착촌(푸에블로, Pueblo)**으로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집니다. 스페인 탐험가 **후안 바우티스타 데 안사(Juan Bautista de Anza)**의 원정을 통해 이 지역의 비옥함을 확인한 후, **호세 호아킨 모라가(José Joaquín Moraga)** 중위의 지휘 아래 **"푸에블로 데 산 호세 데 과달루페(El Pueblo de San José de Guadalupe)"**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설립 목적은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에 주둔하는 스페인 군사 주둔지(프레시디오, Presidio)에 곡식과 가축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농업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산호세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달리 작은 규모의 농촌 마을이었으며, 캘리포니아 중부의 식량 생산 기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19세기 중반 미국-멕시코 전쟁을 통해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후, 산호세는 1850년 **캘리포니아 주(State of California)가 정식으로 승격되었을 때 첫 번째 주도**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주도의 지위는 곧 다른 도시로 이전되었지만, 산호세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근처의 스탠퍼드 대학교와 함께 **실리콘 밸리**의 핵심 도시로 성장하여 세계적인 첨단 기술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이는 창립 당시의 농업 공동체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발전상입니다. 이 날은 산호세의 **오랜 역사와 개척 정신**을 되새기고, 현대의 혁신적인 발전상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 1847년 – 존더분트 전쟁 종결 (스위스)
1847년 11월 29일, 스위스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존더분트 전쟁(Sonderbund War)**이 실질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존더분트 전쟁은 스위스 연방 내에서 **가톨릭 보수파 7개 주(칸톤)가 결성한 동맹**인 존더분트와 나머지 **자유주의·급진주의 개신교 주** 연합 간에 벌어진 짧은 내전이었습니다. 존더분트는 1845년에 결성되었는데, 이는 연방 정부의 권한 강화와 예수회 추방 등의 정책에 반대하고 자신들의 **주권과 가톨릭적 전통**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전쟁은 11월 초에 시작되어 불과 20여 일 만에 마무리되었습니다. 11월 23일에 존더분트의 중심이었던 루체른 주가 함락되었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발레 주가 11월 29일 최종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 전쟁의 과정은 스위스 연방군 사령관 **기욤 앙리 뒤푸르(Guillaume Henri Dufour)** 장군의 신중하고 인도적인 지휘 덕분에 희생자가 매우 적었으며, 이는 뒤푸르가 인도주의적 원칙을 고수했음을 보여줍니다. 전쟁의 결과, 존더분트는 해체되었고, 스위스는 1848년에 **새로운 연방 헌법**을 제정하여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현대적인 연방 국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 헌법은 스위스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졌으며, 종교적·지역적 차이를 극복하고 국민적 통합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1월 29일은 스위스가 **내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통일되고 안정적인 국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 역사적인 날로 평가됩니다. - 1877년 – 토머스 에디슨의 축음기 공개 시연 (미국)
1877년 11월 29일,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자신이 개발한 **축음기(Phonograph)**를 과학 전문 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공개 시연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축음기는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장치였으며, 당시 사람들에게는 마법과 같은 혁신적인 발명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소리의 진동을 바늘을 통해 주석박(Tin Foil)을 입힌 원통에 새겨 넣고, 이 홈을 따라 다시 바늘이 움직이면서 소리를 재생하는 원리를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에디슨이 축음기를 통해 녹음하고 재생한 첫 번째 문장은 **"Mary had a little lamb (메리에게는 작은 양이 한 마리 있었네)"**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발명은 소리의 기록과 보존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이는 음악, 교육, 통신 등 여러 분야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축음기는 이후 레코드판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음악 산업과 대중문화**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에디슨은 축음기를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발명품 중 하나로 여겼으며, 그의 발명은 단순히 기술적인 진보를 넘어 **인류의 삶의 방식과 소통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건은 에디슨을 **'멘로 파크의 마법사'**로 불리게 한 여러 업적 중에서도 가장 초기이자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24년 – 몽골 인민 공화국 성립 (몽골)
1924년 11월 29일, **몽골 인민 공화국(Mongolian People's Republic, MPR)**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몽골이 1921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은 몽골 인민 혁명당(MPRP)이 정권을 장악하고 **군주제를 폐지**하며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한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몽골은 1911년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이후 중국군과 러시아 백군 등 외세의 간섭과 내전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이끄는 몽골 인민당은 소련 적군의 도움을 받아 수도 울란바토르를 장악하고 혁명 정부를 세웠습니다. 이후 1924년, 마지막 종교적 군주였던 **보그드 한(Bogd Khan)**의 사망을 계기로, 몽골 인민 혁명당은 군주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아시아에서 소련에 이어 두 번째로 공산주의 국가**를 선포하였습니다. 몽골 인민 공화국은 이후 70여 년 동안 소련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따랐으며, 경제와 사회 구조의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날은 몽골이 **봉건 제도와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현대적인 국민 국가**를 형성하는 시작점으로 기록되지만, 동시에 소련의 위성 국가로서 **자주성이 제한**되었던 역사적 맥락도 함께 지닙니다. 몽골은 1990년 민주화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현재의 민주 공화국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1944년 – 일본 항공모함 시나노 격침 (태평양/일본)
1944년 11월 29일 새벽, 일본 제국 해군의 초대형 항공모함 **시나노(信濃)**가 미 해군 잠수함 **아처피쉬(USS Archerfish, SS-311)**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시나노는 본래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으로 건조되던 중,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다수의 항공모함을 잃은 후 대형 항공모함으로 설계를 변경하여 완성된 함선이었습니다. 시나노는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이었으며, 두꺼운 장갑과 강력한 방호력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식 취역한 지 불과 10일도 되지 않아, 도쿄만에 정박해 있던 곳에서 구레로 항해하던 중 미 해군 잠수함에게 탐지되었습니다. 아처피쉬는 시나노를 향해 6발의 어뢰를 발사하였고, 이 중 4발이 명중하였습니다. 시나노는 강력한 장갑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건조 결함과 미숙한 승무원들의 대처 실패**로 인해 피해 확산에 실패하였으며, 결국 침몰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 해군의 전력에 큰 손실**을 입혔으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잠수함이 당대 최강의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보기 드문 사례로 **해전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완벽한 방어는 없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시나노의 짧은 생애는 당시 일본 군부가 처했던 **절망적인 상황과 비효율적인 결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됩니다. - 1947년 –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 채택 (국제)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을 담은 결의안 181호**를 찬성 33표, 반대 13표, 기권 10표로 채택하였습니다. 이 결의안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 통치 하에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어 독립시키고, 예루살렘은 국제적으로 관리하는 특수 체제(Corpus Separatum)로 두도록 하였습니다. 분할안에 따르면 전체 면적의 약 56%는 유대 국가에, 약 43%는 아랍 국가에 할당되었으며, 이는 당시 인구 구성비와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이 결의안을 수용**하며 유대 국가 건설의 국제적 승인을 얻게 되었지만,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이 결의안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자신들의 토지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였습니다. 이 결의안은 위임 통치 종료 후 팔레스타인 지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사건이었으나, 아랍 측의 반발로 인해 평화적으로 이행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1948년 영국이 철수하고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제1차 중동전쟁(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복잡하고 장기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1월 29일의 유엔 결의안 채택은 **중동 현대사의 핵심적인 전환점**이며, 현재까지도 논란과 갈등의 근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 1972년 – 아케이드 게임 퐁(Pong) 출시 (미국)
1972년 11월 29일, 미국의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Atari)**에서 제작한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 **'퐁(Pong)'**이 공식적으로 출시되었습니다. 퐁은 단순한 막대와 점으로 구성된 테니스 스타일의 스포츠 게임으로, **세계 최초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비디오 게임**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게임은 아타리의 공동 창업자인 **놀런 부슈널(Nolan Bushnell)**과 엔지니어 **앨런 알콘(Allan Alcorn)**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퐁의 규칙은 매우 간단합니다. 화면 중앙의 네트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막대(라켓)를 상하로 움직여 날아오는 공(점)을 받아치며 득점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직관적이고 경쟁적인 게임 방식**은 당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오락실을 넘어 식당, 바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되었습니다. 퐁의 성공은 **비디오 게임 산업의 상업적 잠재력**을 증명하였고, 이후 수많은 아케이드 게임 개발사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퐁은 기술적으로는 단순했지만, **'코인 투입 후 플레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고, 대중문화 속에서 **'게임'이라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형태**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게임의 출시는 **현대 비디오 게임 산업의 시초**로 평가받으며,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로 간주됩니다. - 1987년 –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국제/대한민국)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KAL 858)** 보잉 707 여객기가 미얀마 근해의 안다만해 상공에서 공중 폭파되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사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공작원 **김현희**와 그녀의 동행인 **김승일**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 행위로 결론지었습니다. 이들은 비행기 화장실 내부에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설치하고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폭파 사건은 대한민국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발생하였으며, **국제적인 긴장과 불안감**을 조성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사건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중대한 도발 행위**로 규정하고 국제 사회에 북한의 테러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였습니다. 사건 후 체포된 김현희는 수사 과정에서 북한 공작원임을 인정하고 범행을 자백하였으며, 이는 북한의 **국가 테러리즘 실체**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 폭파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북한과의 첨예한 대립**을 상징하는 가장 잔혹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는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날은 **평화와 안보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테러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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