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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1월 23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6.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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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의날

 

📌 오늘의 기념일

  • 세계 자유의 날 (대만)
    1954년 1월 23일은 6.25 전쟁 당시 포로로 잡혔던 중국군과 북한군 중 본국 귀환 대신 대만을 선택한 1만 4천여 명의 반공 포로들이 타이베이에 도착한 날입니다. 이 사건은 냉전 체제 하에서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체제 우위를 홍보하는 매우 강력한 상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만 정부는 이들을 '반공 의사'라고 칭송하며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열었고, 이후 매년 1월 23일을 세계 자유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강력한 반공 선전의 성격이 짙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보편적인 인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삶을 선택할 권리를 기리는 날로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이념적 대립이 개개인의 삶과 국가적 정체성 형성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지표입니다.
  • 민주주의 회복의 날 (베네수엘라)
    1958년 1월 23일, 베네수엘라에서는 군사 독재자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를 축출하기 위한 거대한 민중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히메네스 정권은 가혹한 정치적 탄압과 부정부패, 그리고 언론 통제로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학생, 노동자, 그리고 일부 뜻있는 군인들이 합세하여 총파업과 대규모 가로 시위를 전개하였고, 결국 독재자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베네수엘라 현대사에서 '1월 23일 운동'으로 불리며, 수십 년간 지속될 민주 정권의 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복잡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은 이날을 독재에 맞서 승리했던 영광스러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기억하며 매년 거리로 나와 민주적 가치 회복을 촉구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필리핀 제1공화국 창건일 (필리핀)
    1899년 1월 23일,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필리핀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아시아 최초의 민주 공화국 탄탄을 선포했습니다. 이는 수세기 동안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저항해 온 필리핀 혁명군의 숭고한 결실이었습니다. 불라칸주의 말롤로스 대성당에서 거행된 취임식과 함께 공포된 말롤로스 헌법은 주권 재민과 권력 분립의 원칙을 명시하여 근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명확히 했습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필리핀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면서 공화국은 짧은 수명을 다했으나, 필리핀 국민들에게는 외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정부를 구성했던 자부심의 근간이 됩니다. 아시아 전역의 민족주의 운동에 영감을 준 선구적인 사례로서, 필리핀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순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국립 손글씨의 날 (미국)
    미국 문구 협회(WIMA)가 제정한 이 기념일은 미국 독립 선언서에 가장 크고 명확하게 서명한 인물로 유명한 존 핸콕의 생일인 1월 23일을 선택했습니다. 디지털 기기의 급격한 보급으로 인해 직접 펜을 들고 글씨를 쓰는 일이 희귀해진 현대 사회에서, 손글씨가 가진 고유한 개성과 예술성, 그리고 기록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손글씨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쓰는 이의 감정과 정성을 전달하는 강력한 매개체이며, 인지 발달과 창의성 향상, 그리고 집중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이날은 학교와 도서관에서 서예 교실이 열리거나 손편지 쓰기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며,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필체를 공유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인간다운 온기를 유지하려는 문화적 노력의 일환입니다.
  • 전통 수공예의 날 (페루)
    페루는 안데스 산맥의 깊은 역사와 잉카 문명의 유산을 간직한 국가로, 그 전통을 이어가는 수공예 기술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1월 23일을 기념합니다. 페루의 직물 공예, 도자기, 은 세공 기술은 수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독특한 문양과 기법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예술적 가치가 높습니다. 이날은 전국의 장인들이 모여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제작 과정을 시연하는 축제가 열리며, 정부는 우수 장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하여 그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원주민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사라져가는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실질적인 보호 장치 역할을 합니다. 페루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는 가장 찬란한 문화유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며, 국가적으로는 문화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날입니다.
  • 에다의 날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는 북유럽 신화의 정수인 '에다(Edda)'를 기록하고 보존해 온 문학의 성지입니다. 1월 23일경을 전후로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중세 문학의 걸작인 산문 에다와 운문 에다의 가치를 기리며 자국 언어의 우수성을 되새깁니다. 에다는 오딘, 토르, 로키 등 오늘날 전 세계 대중문화와 판타지 문학의 근간이 된 신화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아이슬란드인들에게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닌 민족의 정신적 뿌리와 같습니다. 이날은 전국의 학교와 문화센터에서 에다 낭독회가 열리고, 고대 북유럽어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슬란드어를 보호하기 위한 학술 포럼이 개최됩니다. 세계적인 장르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서의 에다를 조명하고, 아이슬란드가 가진 독보적인 문학적 전통을 미래 세대에게 교육하는 매우 의미 있는 사회적 기념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556년 – 가현 대지진 발생 (중국)
    명나라 시기 산시성 가현 부근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인명 피해를 기록한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규모는 현대 지질학적 추정으로 약 8.0에서 8.3에 달하며, 지진의 진앙지였던 위하 계곡 일대는 인구 밀도가 높고 많은 주민이 지형적 특성상 토굴인 요동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지진 발생 시 토굴이 무너지면서 주민들이 매몰되는 참사가 벌어졌고, 기록에 따르면 약 8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 황하의 수로가 바뀌고 산이 평지가 되는 등 지형에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명나라 정부는 대규모 구휼 활동에 나섰으나 당시의 행정력으로는 재난을 수습하기에 역부족이었으며, 이는 명나라 중기 사회 경제 구조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 1570년 – 제임스 스튜어트 암살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섭정이자 모레이 백작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린리스고 거리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총기(아크부스)를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계획된 정치적 암살로 기록되어 범죄사와 전쟁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이복오빠였던 그는 종교 개혁 당시 프로테스탄트 진영을 결집하여 권력을 장악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가톨릭 지지 세력인 해밀턴 가문의 추종자 제임스 해밀턴에 의해 저격되었습니다. 범인은 창틀 너머에서 정밀하게 사격한 뒤 미리 준비한 말을 타고 도주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 내부의 가문 간 분쟁과 종교 대립을 극단으로 치닫게 했으며, 이후 스코틀랜드 통치 체제 전반에 걸친 극심한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 1719년 – 리히텐슈타인 공국 성립 (유럽)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는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셸렌베르크 영지와 파두츠 백작령을 합병하여 하나의 공국으로 승격시키고, 이를 리히텐슈타인 공국으로 명명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당시 막대한 부를 가졌으나 제국 의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직속 영지가 없었기에, 수십 년에 걸쳐 이 지역들을 매입해 왔습니다. 황제의 이번 승인으로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독립적인 주권을 가진 영주 국가로서의 법적 지위를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유럽의 강소국으로 남아 있는 리히텐슈타인 주권 국가의 기틀이 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과 세계 대전의 풍파 속에서도 독자적인 행정 체제와 외교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역사적 출발점입니다.
  • 1793년 – 제2차 폴란드 분할 (유럽)
    러시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를 무력으로 분점하기로 합의한 제2차 폴란드 분할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1772년 제1차 분할 이후 폴란드는 국가 재건을 위해 헌법을 제정하고 군대를 정비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으나, 폴란드의 강성해짐을 경계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다시 한번 개입한 것입니다. 이 분할로 인해 폴란드는 비옥한 영토의 절반 이상과 인구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으며, 남은 영토마저 사실상 러시아의 보호국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폴란드 귀족들과 민중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를 중심으로 강력한 저항 운동을 전개했으나,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795년 최종 분할로 이어지며 국가 자체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 1849년 – 엘리자베스 블랙웰 의학 박사 학위 취득 (미국)
    엘리자베스 블랙웰이 뉴욕 제네바 의과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의사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당시 의학계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의 지적 능력을 낮게 평가하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블랙웰은 10곳 이상의 의과대학에서 입학 거절을 당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제네바 의과대학에서도 동료 학생들과 교수들의 냉대와 조롱을 견뎌야 했으나, 그녀는 실력으로 그 모든 차별을 정면 돌파했습니다. 졸업식 당일 그녀의 성취는 미국 전역에 보도되어 큰 화제가 되었으며, 이후 그녀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성들을 위한 병원과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돕는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블랙웰의 발자취는 의학 교육의 성벽을 허문 역사적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07년 – 국채보상운동 발의 (한국)
    대한제국기 대구의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은 일본이 강요한 차관 1,300만 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공식적으로 제안했습니다. 당시 일제는 한국의 경제적 자립을 막고 식민지화를 가속하기 위해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빚을 지우고 있었습니다. 서상돈의 발의에 김광제 등이 호응하며 시작된 이 운동은 '국채보상기성회'의 결성으로 이어져 전국적인 구국 운동으로 번져나갔습니다. 남성들은 담배를 끊어 돈을 모으는 금연 운동을 전개했고, 여성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비록 일제 통감부의 방해 공작과 주동자들에 대한 횡령 모함 등으로 인해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하고 좌절되었으나,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이 주체가 된 최초의 경제적 저항 운동이자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 1943년 – 카사블랑카 회담 종료 및 무조건 항복 원칙 합의 (국제)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개최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비밀 정상회담이 1월 23일을 기점으로 핵심 합의에 도달하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연합군은 추축국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대해 어떠한 타협도 없는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만을 수용하겠다는 강경한 원칙을 공식 천명했습니다. 이는 전쟁의 승리 이후 독일이 다시는 군사 강국으로 부상하지 못하게 철저히 파괴하겠다는 의지였으며, 연합국 간의 분열을 꾀하려는 독일의 평화 협상 제안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또한 북아프리카 작전의 성공적 마무리를 축하하고 다음 타겟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침공을 확정하는 등 전쟁 중반부의 군사 전략을 구체화했습니다.
  • 1960년 – 트리에스테호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 잠항 (국제)
    미 해군의 심해 잠수정 트리에스테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에서 가장 깊은 지점인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 바닥에 도달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자크 피카르와 돈 월시 대위는 약 5시간에 걸친 하강 끝에 해수면 아래 약 10,911미터 깊이에 안착했습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심해의 엄청난 수압을 견디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졌으나, 트리에스테호는 특수 설계된 관측창을 통해 심해 바닥에서도 가자미류와 같은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는 심해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기존의 생물학적 상식을 뒤엎는 혁명적인 발견이었으며, 해양학 및 지구과학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인류가 달에 발을 내딛기 9년 전에 이루어진 이 극한의 도전은 과학 기술의 승리이자 인류의 한계를 시험한 사건입니다.
  • 1968년 –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한국)
    미 해군의 최첨단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작전 수행 중 북한 해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납치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82명이 북한에 억류되었으며, 한반도에는 전쟁 직전의 일촉즉발 위기가 감돌았습니다. 특히 이틀 전 발생한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1.21 사태)과 맞물려 박정희 정부는 즉각적인 응징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미국은 승조원의 안전과 베트남 전쟁 상황을 고려하여 북한과 판문점에서 비밀 협상을 전개했습니다. 결국 미국이 영해 침범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문서에 서명한 뒤에야 11개월 만에 승조원들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냉전 시대 한미 동맹의 미묘한 균열과 북미 간의 첨예한 갈등을 노출했습니다.
  • 1986년 – 보이저 2호 천왕성 최접근 및 탐사 (미국)
    미국의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가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천왕성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여 인류 최초로 이 거대 얼음 행성의 비밀을 지구로 전송했습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의 고리 체계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10개의 새로운 위성을 추가로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천왕성이 자전축이 옆으로 98도나 기울어진 채 공전한다는 독특한 물리적 특성을 정밀하게 관측했으며, 대기 성분이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강력한 자기장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이 탐사는 머나먼 외행성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폭발적으로 확장시켰으며, 행성 형성 이론을 재검토하게 만드는 중요한 데이터들을 제공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천왕성을 직접 방문하여 근접 탐사를 수행한 탐사선은 보이저 2호가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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