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1월 24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6. 1. 20.
반응형

📌 오늘의 기념일

  • 공국 연합의 날 (루마니아)
    1859년 1월 24일은 몰다비아 공국과 왈라키아 공국이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를 공동 군주로 선출하며 현대 루마니아 국가의 초석을 다진 매우 상징적인 날입니다. 이 사건은 수세기에 걸쳐 오스만 제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분열되어 있던 루마니아 민족이 하나의 단일 국가로 통합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쿠자의 선출은 단순한 통치자의 교체를 넘어 민족적 자결권을 대내외에 선포한 사건이었으며, 이후 1862년 공식적인 '루마니아 공국'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루마니아인들은 이 날을 '작은 통합의 날'이라 부르며 국경일로 기념합니다. 전국 각지에서는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전통 춤인 '호라 유니이'를 추며 민족적 결속력을 다집니다. 이 통합 정신은 훗날 1918년 트란실바니아까지 아우르는 '대통합'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기에 역사적 무게감이 매우 큽니다.
  • 국제 교육의 날 (국제 연합)
    유엔 총회는 전 세계 평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교육이 차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매년 1월 24일을 국제 교육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기본 인권일 뿐만 아니라, 빈곤의 대물림을 끊고 성평등을 달성하며 기후 위기 등 인류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전쟁, 빈곤, 차별 등의 이유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기초적인 읽기와 쓰기조차 어려운 성인 인구도 상당수에 달합니다. 유엔은 이 날을 통해 각국 정부와 시민 사회가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 기회를 모두에게 보장할 것을 촉구합니다. 매년 특정 주제를 정해 교육 시스템의 혁신과 디지털 격차 해소, 교사의 권익 보호 등을 논의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한 교육적 투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다양한 국제 행사를 개최합니다.
  • 국가 소녀의 날 (인도)
    인도 여성아동개발부는 인도 사회 내에 깊게 뿌리 박힌 여아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2008년부터 1월 24일을 국가 소녀의 날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여전히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한 여아 낙태, 조혼 풍습, 교육 기회의 차단 등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가 잔존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날을 기해 여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전개합니다. 특히 1월 24일은 인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인 인디라 간디가 1966년 취임한 날이기도 하여, 여성의 리더십과 사회적 진출을 상징하는 의미가 더욱 큽니다. 인도 전역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들은 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여성이 국가 발전의 당당한 주역임을 강조하며 성별에 따른 장벽을 허무는 데 주력합니다.
  • 알라시타스 축제 (볼리비아)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 라파스에서는 매년 1월 24일부터 풍요의 신 '에케코'를 기리는 알라시타스 축제가 화려하게 개막합니다. 이 축제는 안데스 원주민들의 전통 신앙과 가톨릭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축제의 핵심은 '미니어처'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그해에 꼭 얻고 싶은 물건들, 예를 들어 집, 자동차, 돈, 가축, 심지어 대학 졸업장이나 항공권 등을 아주 작고 정교하게 만든 미니어처로 구입합니다. 이렇게 구입한 미니어처를 에케코 신에게 바치고 가톨릭 신부의 축복을 받으면 실제 현실에서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미니어처 시장으로 변하는 이 독특한 풍경은 볼리비아 국민들의 낙천적인 기질과 풍요에 대한 열망을 잘 보여줍니다. 2017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만큼 문화적 가치가 높으며,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 가정 내 안전의 날 (영국)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서구 국가에서는 겨울철 사고가 빈번한 1월 24일을 전후해 가정 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입니다. 통계적으로 사람들은 외부보다 집 안이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난방 기구로 인한 화재, 낡은 전기 배선의 합선, 계단에서의 미끄러짐, 영유아의 생활용품 삼킴 사고 등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추운 날씨로 인해 실내 활동이 많아지는 시기인 만큼, 소방 당국과 보건 기구는 각 가정의 화재 경보기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가스 밸브 및 전열 기구의 상태를 점검할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이 기념일은 사소한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예방이 최고의 안전 대책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각 지자체는 취약 계층을 방문해 안전 설비를 점검해주거나 사고 발생 시 응급 처치 요령을 교육하며 시민들의 안전한 생활을 지원합니다.
  • 국립 보완의 날 (미국)
    미국에서는 매년 1월 24일을 타인에게 진심 어린 칭찬과 긍정적인 피드백을 건네는 국립 보완의 날로 보냅니다.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기 쉬운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의 장점을 찾아내어 이를 직접 표현함으로써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사회 전반의 행복 지수를 높이려는 취지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구체적이고 진실된 격려의 한마디는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과학적인 효과가 입증되어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특정 해시태그를 활용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릴레이가 이어지며, 학교나 기업에서도 서로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됩니다. 이 날은 말 한마디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며, 비난보다는 격려가, 질책보다는 칭찬이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문화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41년 – 칼리굴라 황제 암살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의 제3대 황제였던 가이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 우리에게 '칼리굴라'로 잘 알려진 폭군이 41년 1월 24일 팔라티누스 언덕에서 근위대 대장 카시우스 카에레아를 비롯한 음모자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그의 치세는 불과 4년도 채 되지 않았으나, 초기 관대했던 모습과는 달리 심각한 질병을 앓은 후 광기 어린 폭군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하게 강요하고, 원로원을 모욕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와 기행으로 국가 재정을 탕진했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근위병들과 원로원 일부 세력이 결탁하여 그를 처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은 로마 역사상 현직 황제가 군대에 의해 직접 살해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며, 로마 황제의 권위가 법적 정당성보다는 군사력과 친위대의 지지에 얼마나 취약하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사후 그의 기록은 말살되었으나, 그의 몰락은 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 1458년 – 마티아스 코르비누스 국왕 선출 (헝가리)
    헝가리의 전설적인 영웅 야노슈 후냐디의 아들인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1458년 1월 24일, 불과 15세의 나이로 헝가리 왕국의 국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헝가리는 외세의 위협과 내부 귀족들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나, 마티아스는 즉위 후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펼치며 국가를 빠르게 안정시켰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앞선 상비군 중 하나인 '검은 군대'를 창설하여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헝가리를 중부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가 구축한 '코르비니아 도서관'은 당시 유럽에서 바티칸 도서관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법을 엄격히 집행하면서도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 '정의로운 마티아스 왕'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그의 치세는 오늘날까지 헝가리 역사의 가장 찬란한 황금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1679년 – 기사 의회 해산 (영국)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1679년 1월 24일, 왕정복고 이후 무려 18년 동안 유지되어 온 '기사 의회'를 해산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의회는 초기에는 국왕에게 매우 우호적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국왕의 친가톨릭 정책과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특히 찰스 2세의 동생인 제임스 2세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 때문에 그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려는 '배제 법안'이 추진되자, 국왕은 자신의 권위와 왕실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의회 해산이라는 강수를 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영국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왕권을 옹호하는 '토리당'과 의회의 권한 및 개신교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휘그당'의 원형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대적인 정당 정치의 시초가 되었으며, 국왕과 의회 간의 권력 투쟁은 훗날 명예혁명과 입헌군주제의 확립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1742년 – 카를 7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선출 (독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한창이던 1742년 1월 24일, 비텔스바흐 가문의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알브레히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7세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1437년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이 독점해왔던 황제 자리를 약 300년 만에 타 가문이 차지한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지원을 등에 업고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정작 합스부르크의 수장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황제 대관식을 치르는 동안 그의 본거지인 바이에른이 오스트리아군에 점령당하는 굴욕을 겪었으며, 재임 기간 내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방랑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의 짧고 불운한 통치는 당시 유럽 열강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영토 야욕이 얽혀 제국의 권위가 얼마나 실추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745년 그가 사망한 후 황제 자리는 다시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돌아갔으며, 이 사건은 독일 역사에서 제국 통치권의 위기와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습니다.
  • 1848년 – 제임스 마셜의 금 발견 (미국)
    1848년 1월 24일, 캘리포니아 북부 콜로마 지역의 아메리칸 강가에 위치한 서터스 밀에서 제임스 윌슨 마셜이라는 목수가 강바닥에서 빛나는 금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이 우연한 발견은 미국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뒤흔든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비밀로 유지되려 했으나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 아시아, 남미에서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거대한 인구 이동은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작은 마을을 순식간에 국제적인 대도시로 성장시켰으며, 미국 서부 개척을 수십 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막대한 금 유통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팽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면에는 원주민들의 무참한 학살과 환경 파괴, 이주민들 간의 폭력 사태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31번째 주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사건은 현대 미국의 경제적, 인구학적 기초를 형성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35년 – 캔 맥주 최초 판매 (미국)
    1935년 1월 24일, 미국 뉴저지주의 크루거 양조 회사는 리치먼드에서 세계 최초로 상업용 캔 맥주인 '크루거스 크림 에일'을 출시하며 주류 산업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금주법 폐지 이후 맥주 판매가 다시 활기를 띠던 시기에 등장한 캔 용기는 기존의 병이나 무거운 오크통 유통 방식이 가졌던 한계를 한 번에 해결했습니다. 캔은 병보다 무게가 훨씬 가벼워 운송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고, 쌓아서 보관하기가 용이해 공간 효율성도 뛰어났습니다. 특히 맥주의 맛을 변질시키는 주원인인 자외선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탄산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여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초기 캔은 전용 구멍 뚫기 도구가 필요할 만큼 두꺼웠지만,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맥주 소비 문화를 가정 중심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이는 식품 포장 기술이 물류 시스템과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업적 성과로 꼽힙니다.
  • 1965년 – 윈스턴 처칠 서거 (영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승리를 이끌었던 위대한 정치가 윈스턴 처칠 경이 1965년 1월 24일, 90세를 일기로 런던 자택에서 서거했습니다. 그는 1940년 나치 독일의 공습으로 영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수상으로 취임하여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인한 의지로 국민들의 사기를 결집시켰습니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웅변가였던 그는 루스벨트, 스탈린과 함께 연합군의 승리를 조율했으며, 전후에는 '철의 장벽' 연설을 통해 냉전 체제의 도래를 예견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6년간의 전쟁 회고록인 '제2차 세계대전'을 집필하여 195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그의 서거를 기리기 위해 국왕이 아닌 인물로서는 드물게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전 세계 수많은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20세기를 호령한 거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오늘날까지도 위기 극복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 1984년 – 매킨토시 컴퓨터 출시 (미국)
    1984년 1월 24일,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컴퓨터는 검은 화면에 복잡한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하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으나, 매킨토시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를 표준으로 채택하여 누구나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한 전설적인 TV 광고 '1984'는 기존의 거대 IT 기업(IBM)이 주도하던 통제된 환경을 깨부수고 개인에게 정보의 힘을 부여하겠다는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비록 초기 모델은 128KB라는 부족한 메모리와 비싼 가격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 인쇄되는 '위지윅(WYSIWYG)' 기술과 직관적인 디자인은 출판, 그래픽, 교육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현대적인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을 정립하고 디지털 혁명을 일상으로 끌어들인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1986년 – 보이저 2호 천왕성 근접 통과 (NASA)
    1977년 지구를 떠난 인류의 사절단 보이저 2호가 1986년 1월 24일,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천왕성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며 우주 탐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천왕성은 지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망원경만으로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보이저 2호는 천왕성의 구름 위 약 8만 km 지점까지 다가가 생생한 근접 사진과 과학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했습니다. 이 탐사를 통해 천왕성이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거대 얼음 행성이라는 점,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과 거의 평행하게 누워 있다는 독특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10개의 새로운 위성과 2개의 새로운 고리를 발견했으며, 강력한 자기장의 존재도 밝혀냈습니다. 지구에서 약 30억 km 떨어진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정교하게 작동하며 보내온 이 정보들은 태양계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이는 인류의 지적 호기심이 태양계 변방까지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과학적 승리였습니다.
  • 2011년 – 도모데도보 국제공항 폭탄 테러 (러시아)
    2011년 1월 24일 오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관문인 도모데도보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끔찍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이 폭발로 현장에서 37명이 목숨을 잃고 170명 이상의 무고한 여행객과 시민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테러범은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인 입국 대기실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인명 피해를 극대화했습니다. 이 사건은 체첸 독립을 주장하는 북코카서스 지역 무장 단체의 소행으로 밝혀졌으며, 러시아 정부의 보안 체계에 대한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습니다. 테러 직후 전 세계 공항은 보안 등급을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으며, 항공 보안 시스템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검토와 강화 조치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테러범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선포하며 국가 비상 사태에 준하는 대응을 지시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국제 사회가 테러리즘이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 정보 공유와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다시 한번 뼈아프게 일깨워주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