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1월 25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6. 1. 20.
반응형

에디슨과 스완의 전구 합작 회사 설립

📌 오늘의 기념일

  • 성 바오로의 개종 축일 (기독교)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상징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사도 바오로의 회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본래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초기 유대교의 전통을 고수하고 기독교 공동체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그는,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길에서 부활한 예수의 강렬한 빛과 음성을 마주하며 눈이 멀게 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흘간의 암흑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참회한 그는 안니아의 기도로 시력을 회복한 뒤,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유대교의 한 분파에 머물던 기독교를 전 유럽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보편적인 세계 종교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신학적 통찰이 담긴 서간문들은 신약성경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계는 이 날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변화와 용서, 그리고 굳건한 신념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흐름을 묵상하며 성대한 전례를 거행합니다.
  • 번즈 나이트 (영국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영혼이자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로버트 번즈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로, 스코틀랜드인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문화적 결속력이 절정에 달하는 국가적 축제입니다. 18세기 시인 번즈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민중의 고단한 삶과 사랑,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열망을 스코틀랜드 고유의 언어와 방언으로 노래하며 민족 문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매년 1월 25일 저녁이 되면 전 세계 스코틀랜드 공동체는 '번즈 서퍼'라는 전통 만찬을 개최합니다. 이때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스코틀랜드 전통 요리인 해기스를 들여오고, 번즈의 시 '해기스에게 바치는 주소'를 낭송하며 시인의 위대한 유산을 기립니다. 특히 그가 작사한 '올드 랭 사인'은 전 세계적으로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으며, 이 기념일은 단순한 문학 행사를 넘어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계승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타티아나의 날 (러시아)
    러시아에서 '학생의 날'로 널리 알려진 이 기념일은 1755년 엘리자베타 여왕이 모스크바 대학교 설립안에 서명한 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로마 시대의 순교자 성녀 타티아나를 추모하는 종교적 축일이었으나, 러시아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 설립과 맞물리면서 대학생들의 지성과 젊음을 축하하는 국가적 축제로 변모했습니다. 19세기에는 모스크바 전체가 대학생들의 열기로 가득 찼으며, 오늘날에도 러시아 전역의 대학교에서는 우수 학생들에 대한 시상식, 전통적인 꿀 술(메도부하) 시음회, 화려한 공연 등이 성대하게 열립니다. 특히 이 날은 겨울 시험 기간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어 학생들에게는 해방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상징적인 날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2005년에 이를 공식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여 청년 세대의 학문적 탐구 정신과 사회적 역할을 고취하고 있으며, 모든 학생이 주인공이 되어 사회적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 전국 유권자의 날 (인도)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창립일인 1950년 1월 25일을 기념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인 유권자의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 2011년에 제정했습니다. 인도는 거대한 인구와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선거 관리의 복잡성이 매우 높은 국가입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인도 전역에서는 새로운 유권자들을 발굴하여 등록을 장려하고, 투표권 행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얼마나 신성하고 강력한 권리인지를 교육하는 대규모 캠페인이 전개됩니다. 특히 청년 유권자들에게 유권자 증명서를 수여하며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심어주는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립니다. 이는 인도가 지향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문화를 정착시키고, 사회적 계급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대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민주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기념일입니다.
  • 1월 25일 혁명의 날 (이집트)
    2011년 이집트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날로, 이른바 '아랍의 봄'의 가장 뜨거웠던 정점을 상징합니다. 본래 이 날은 경찰의 헌신을 기리는 '경찰의 날'이었으나,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장기 독재와 심각한 부패, 경제난에 신음하던 시민들이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집결하면서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소셜 미디어를 소통의 창구로 삼아 조직적으로 시위를 확산시켰으며, '빵, 자유, 사회 정의'라는 구호를 외치며 전 세계에 이집트 민중의 변화에 대한 갈망을 알렸습니다. 결국 이 운동은 18일간의 사투 끝에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끌어내는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혁명 이후의 과정에서 군부 재집권 등 많은 정치적 진통을 겪었으나, 이집트 민중에게 스스로의 연대로 부당한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결정적인 날로 평가받으며 현재도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그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327년 – 에드워드 3세 잉글랜드 국왕 즉위 (영국)
    부왕 에드워드 2세가 강제 폐위되고 살해되는 격동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당시 14세였던 에드워드 3세가 잉글랜드의 새로운 군주로 추대되었습니다. 즉위 초기에는 어머니 이사벨라 왕비와 그녀의 정부 로저 모티머의 강력한 섭정 아래에서 실권을 행사하지 못했으나, 1330년 과감한 친정을 선포하며 모티머를 처형하고 독자적인 통치권을 확보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전쟁 중 하나인 백년 전쟁의 서막을 열었으며, 크레시 전투에서 잉글랜드 장궁병의 전술적 우위를 입증하며 유럽 최고의 군사 전략가로 부상했습니다. 또한 가터 훈장을 제정하여 기사도 문화를 확립하고 의회의 기능을 강화하여 잉글랜드 국정 운영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훗날 흑사병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재앙 속에서도 행정력을 유지하며 잉글랜드 중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탁월한 군주로 평가받으며, 그의 치세는 잉글랜드가 유럽의 주도권을 쥐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1554년 – 상파울루 도시 설립 (브라질)
    예수회 선교사들인 마누엘 다 노브레가와 주제 지 안시에타가 브라질 남부 고원 지대에 작은 선교 기지를 건설하며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 대도시 상파울루의 기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건물이 완공되어 첫 미사가 봉헌된 날이 마침 성 바오로의 개종 축일이었기에 도시의 명칭이 '상파울루'로 정해졌습니다. 초기에는 아마존 내륙 원주민들에 대한 가톨릭 선교와 교육을 목적으로 한 소박한 정착지에 불과했으나, 이후 '반데이란트'라 불리는 탐험가들이 내륙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찾아 떠나는 전진 기지로 활용되면서 도시의 규모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들어 커피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철도 부설, 유럽 이민자들의 대거 유입을 거치며 남미 최대의 산업 및 금융 허브로 진화했습니다. 상파울루의 탄생은 단순한 정착지의 시작을 넘어, 브라질이라는 거대 국가가 연안 지역을 벗어나 광활한 내륙으로 영토와 경제력을 확장하는 전략적 교두보가 마련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 1759년 –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즈 탄생 (영국)
    스코틀랜드 에어셔의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로버트 번즈는 평생 고단한 농사일을 하면서도 인간의 고귀한 가치와 자연의 순수함을 노래한 천재적인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영어 문체에서 탈피하여 스코틀랜드 민중의 정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방언(스코트어)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시를 썼으며, 이는 사라져가던 스코틀랜드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첫 시집 '스코틀랜드 방언에 의한 시집'은 발간 즉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계급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만인의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과 우정을 따뜻하게 묘사하여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민요들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특히 새해에 부르는 '올드 랭 사인'은 국경을 초월한 우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번즈는 사후 스코틀랜드의 문화적 독립성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으며 인류 문학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 1881년 – 에디슨과 스완의 전구 합작 회사 설립 (미국/영국)
    전구의 발명권과 실용화를 두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미국의 토마스 에디슨과 영국의 조셉 스완이 각자의 기술적 우위를 인정하고 특허권을 통합하여 '에디슨 앤 스완 연합 전등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전까지의 전구는 필라멘트가 쉽게 타버리거나 제작 단가가 너무 높아 일반 대중이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두 천재 발명가의 기술이 결합되면서 내구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탄소 필라멘트 전구의 대량 생산 체계가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이 합작 회사의 출범은 단순히 제품 생산을 넘어 발전소 건설과 송전 시스템의 표준화를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인류의 밤을 영구적으로 밝히는 조명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도시의 밤거리가 대낮처럼 밝아지면서 공장의 가동 시간이 연장되어 산업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사람들의 여가 생활과 도시 디자인은 가스등 시대의 어두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전기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도시 문명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습니다.
  • 1890년 – 넬리 블라이의 72일간 세계 일주 완수 (미국)
    미국의 선구적인 여성 기자 넬리 블라이가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 가상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홀로 떠났던 여정을 72일 6시간 11분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귀환했습니다. 1889년 11월 14일, 여성 혼자 몸으로 세계를 일주한다는 것에 대한 주위의 극심한 우려와 사회적 편견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 그녀는 증기선, 기차, 인력거 등 당시 가용 가능한 모든 최첨단 교통수단을 이용해 대서양, 유럽, 아시아, 태평양을 횡단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녀의 여정은 전 세계 언론에 연일 실시간으로 보도되며 대중에게 지구가 하나의 긴밀한 연결망으로 묶여 있다는 현대적 세계관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여성이 남성 못지않은 강인한 정신력과 실천력을 가졌음을 전 세계에 증명한 여성 해방의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넬리 블라이의 성공은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공간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19세기 말 최대의 이벤트이자 저널리즘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쾌거입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19년 – 국제연맹 창설 공식 승인 (프랑스)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겪은 인류가 항구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서 국제 평화 기구인 국제연맹의 설립안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안한 14개조 평화 원칙을 기반으로 한 이 기구는, 국가 간의 분쟁을 무력이 아닌 대화와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고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려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출범했습니다. 비록 기구 자체의 군사적 강제력이 부족하고, 제안국인 미국이 정작 상원의 반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등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훗날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치가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벗어나 범세계적인 규범과 협력의 틀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현대적 외교 정책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매우 큽니다. 국제연맹이 시도했던 노동권 보호, 질병 퇴치, 난민 구호 등의 활동은 오늘날 국제연합(UN)의 모태가 되었으며, 국제 사회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연대하는 방식을 학습한 소중한 역사적 실험이었습니다.
  • 1947년 – 암흑가의 제왕 알 카포네 사망 (미국)
    미국 금주법 시대에 시카고를 거점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플로리다의 저택에서 4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밀주, 도박, 살인 등 온갖 강력 범죄를 조직화하여 하나의 거대한 기업처럼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고, 당시 부패한 공권력을 매수하여 법 위에 군림했던 인물입니다. 1929년 경쟁 조직원들을 무참히 학살한 '성 발렌타인 데이 학살'의 배후로 지목되었음에도 증거 부족으로 매번 수사망을 피해갔던 그는, 결국 강력범죄가 아닌 탈세 혐의로 기소되어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수감 생활 중 매독으로 인한 정신 및 신체 기능의 마비가 심해져 가석방되었으나, 예전의 권세는 온데간데없이 비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의 생애는 수많은 느와르 영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미국의 어두운 범죄사와 금주법이라는 무리한 정책이 초래한 부작용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사후 미국 수사 기관은 조직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법 집행 체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 1949년 – 제1회 에미상 시상식 개최 (미국)
    미국 텔레비전 예술 과학 아카데미가 주관한 역사적인 제1회 에미상 시상식이 로스앤젤레스 애슬레틱 클럽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텔레비전은 이제 막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신생 매체였으나, 에미상은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제작자들의 예술적 성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에미(Emmy)'라는 명칭은 초기 텔레비전 카메라 튜브인 '이미지 오디콘(Image Orthicon)'의 약칭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기술적 혁신과 예술적 표현이 결합된 방송 매체의 특성을 상징합니다. 초기에는 로컬 방송 프로그램 위주로 시상이 진행되었으나, 텔레비전이 라디오와 영화를 압도하는 강력한 대중 매체로 성장함에 따라 에미상 역시 세계 최고 권위의 방송 시상식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에미상의 탄생은 텔레비전이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를 넘어 영화나 연극에 버금가는 독자적인 예술 장르이자 현대 대중문화의 중심축으로 공인받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지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 1971년 – 이디 아민의 우간다 군사 쿠데타 (우간다)
    우간다의 군 사령관이었던 이디 아민이 밀턴 오보테 대통령이 영연방 수반 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틈을 타 전격적인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8년 동안 이어진 그의 통치는 아프리카 현대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기괴한 독재 정치의 전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민은 스스로를 '지상의 모든 짐승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의 주인'이라 칭하며 정적과 무고한 시민 수십만 명을 학살했고, 국가 경제를 지탱하던 아시아계 주민들을 대거 추방하여 우간다 경제를 회생 불가능한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습니다. 그의 폭압적인 정치는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으며, 1979년 탄자니아군과 우간다 반군의 연합 공격으로 실각할 때까지 우간다는 암흑과도 같은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군사 독재가 한 국가의 민주적 시스템과 국민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의 증거이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 이후 겪어야 했던 정치적 불안정과 권력 남용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됩니다.
  • 1981년 – 중국 '사인방' 및 반혁명 집단 판결 (중국)
    중국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은 10년 동안 중국 대륙을 광기와 폭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의 주역 '사인방'과 이미 사망한 린뱌오 측근 세력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마오쩌둥의 부인이었던 장칭과 장춘차오에게는 사형(2년 집행유예)이 선고되었으며, 야오원위안과 왕훙원에게는 무기징역 등 중형이 내려졌습니다. 이 재판은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자행된 수많은 지식인 탄압과 인권 유린에 대한 역사적·사법적 단죄이자, 마오쩌둥 사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 체제가 극좌적 노선을 폐기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걷겠다는 대내외적 선언이었습니다. 장칭은 법정에서 끝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저항했으나, 이 판결을 통해 중국 공산당은 과거의 과오를 일정 부분 정리하고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으로 나아가는 정치적 명분과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국 현대사에서 극심한 이데올로기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국가 정상화와 경제 성장의 길로 들어선 중대한 전환점이자 사법 정의의 실현 과정으로 평가받습니다.
  • 2011년 – 이집트 혁명의 대규모 시위 발발 (이집트)
    30년간 장기 집권하며 철권통치를 휘두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이집트 전역에서 폭발했습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큰 영감을 받은 이집트 시민들은 부패한 정권, 심각한 실업 문제, 경찰의 고문과 인권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젊은 층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정부의 검열을 피해 시위 정보를 공유하고 국제 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영리한 투쟁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무바라크 정권은 인터넷 차단과 무력 진압으로 대응했으나, '자유와 존엄'을 외치는 민중의 거센 물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이 혁명은 18일 만에 무바라크의 하야라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중동 전역을 휩쓴 '아랍의 봄'의 가장 화려한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이후의 민주화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나, 평범한 시민들이 연대하여 거대 독재자를 무너뜨린 이 사건은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시민 사회의 힘을 증명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