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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기념일
- 대서 (대한민국)
24절기 가운데 열두 번째 절기입니다. 태양이 황경 120°에 도달하는 시점으로, 양력 7월 22일이나 23일에 해당합니다. 농촌에서는 벼의 생육 상태를 살피며 더위를 대비하는 시기입니다. - 1952년 이집트 혁명 기념일 (이집트)
1952년 7월 23일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파루크 왕정을 전복했습니다. 이후 무함마드 나기브와 가말 압델 나세르가 주도한 공화국 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랍 민족주의 확산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국왕 즉위일 (오만)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가 1970년 7월 23일 부친을 폐위하고 즉위했습니다. 오만 정부는 이날을 ‘르네상스 데이’로 지정해 국가 현대화 성과를 기념합니다. 연례 국경일 행사와 불꽃놀이가 열립니다. - 현충일 (파푸아뉴기니)
7월 23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몰 장병을 추모하는 Remembrance Day입니다. 1942년 코코다 전투 등에서 희생된 병사를 기리는 의미를 지닙니다.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 추도식과 퍼레이드가 개최됩니다. - 세계 쇼그렌 증후군의 날(국제)
자가면역질환인 쇼그렌 증후군 인식을 높이기 위한 날입니다. 병명을 정립한 헨리크 쇼그렌 의사의 1899년 7월 23일 생일을 기념해 제정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환자 지원 행사와 연구 기금 모금이 진행됩니다. -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날 (미국)
1984년 미국 아이스크림협회가 소비 촉진을 위해 7월 23일을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연방 차원의 공식 지정은 없으나 업계와 언론이 매년 같은 날짜에 판촉 행사를 실시합니다. 일부 자료는 7월 20일로 안내하지만 업계 표준은 23일입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811 – 비잔티움군 플리스카 약탈 (불가리아)
니케포루스 1세가 이끄는 비잔티움군이 불가리아 수도 플리스카를 점령했습니다. 국가 보고가 탈취되면서 불가리아는 대응 병력을 신속히 조직했습니다. 충돌은 7월 26일 베르비차 협곡 전투로 이어졌습니다. - 1319 – 호스피탈 기사단, 키오스 해전 승리 (그리스)
호스피탈 기사단 함대가 에게해 키오스 인근에서 아이디니드 함대를 격파했습니다. 승리로 기사단은 해상 교통로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지역 무역 질서에도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 1677 – 덴마크‑노르웨이군 마르스트란 점령 (스웨덴)
스카니 전쟁 과정에서 덴마크‑노르웨이가 스웨덴 요새 항구 마르스트란을 함락했습니다. 점령으로 덴마크 해군은 북해 진출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스웨덴은 해상 방어선을 재조정했습니다. - 1793 – 프로이센군 마인츠 재점령 (독일)
제1차 대프랑스 동맹전에서 프로이센군이 마인츠를 프랑스군으로부터 다시 확보했습니다. 도시 수복은 라인 강 방어선 재구축에 기여했습니다. 프랑스 혁명군은 라인 좌안에서 후퇴했습니다. - 1829 – 버트, 타이포그래퍼 특허 획득 (미국)
윌리엄 오스틴 버트가 초기 기계식 인쇄 장치인 타이포그래퍼 특허를 받았습니다. 장치는 활자 배열 원리를 기계화해 문서 작성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후 타입라이터 발명의 기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 1881 – 아르헨티나·칠레 국경 조약 체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양국이 경계 획정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협정은 안데스 산맥 축을 따라 영유권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후 남미 남단 국경 분쟁 해결의 기본 문서가 되었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03 – 포드사 첫 차량 판매 (미국)
헨리 포드가 설립한 포드 모터 컴퍼니가 모델 A 1호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했습니다. 계약가는 850달러였습니다. 양산형 자동차 시대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1908 – 오스만 제국 제2차 헌법 공포 (튀르키예)
청년 튀르크당의 압력으로 술탄 압둘하미트 2세가 1876년 헌법을 복원했습니다. 입헌 체제 시도가 재개되며 의회 활동이 재정비되었습니다. 이후 제국 정치 구조에 큰 변동이 있었습니다. - 1914 – 오스트리아‑헝가리, 세르비아에 최후통첩 (오스트리아)
사라예보 사건 조사권 등을 요구한 최후통첩이 세르비아 정부에 전달되었습니다. 세르비아는 대부분을 수락했으나 사법 개입 조항을 거부했습니다. 5일 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 1921 – 중국공산당 창당 대회 개막 (중국)
상하이에서 13명의 대표가 참가한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렸습니다. 회의는 당 조직과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장기간 내전과 항일 전쟁을 거쳐 집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 1952 – 자유장교단 쿠데타 단행 (이집트)
무함마드 나기브와 가말 압델 나세르가 왕정을 전복했습니다. 파루크 1세는 퇴위 후 이탈리아로 망명했습니다. 사건은 중동 지역 공화국화 흐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1972 – 랜드샛 1호 발사 (미국)
미국 항공우주국이 지구 관측 위성 랜드샛 1호를 캘리포니아 밴던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했습니다. 위성은 다중분광 이미지를 수집해 지질·농업 연구에 활용됐습니다. 장기적인 지구 관측 프로그램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사건 들여다보기
1952 – 자유장교단 쿠데타 단행 (이집트)
[사건 개요]
1952년 7월 23일 새벽, 이집트 군 비밀조직인 자유장교단이 카이로에서 군사 행동을 개시해 국왕 파루크 1세를 퇴위시켰습니다. 쿠데타는 큰 유혈 충돌 없이 진행되었으며, 혁명지휘위원회(후일 혁명지도평의회)가 곧바로 국가 권한을 장악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 1919년 독립운동 이후에도 영국군이 수에즈 지대를 장기간 주둔하며 이집트의 실질적 주권이 제한됐습니다.
- 1948년 1차 중동전쟁 패배로 군 내부 불만이 고조됐고, 왕정과 정당 정치가 무능하다는 평가가 확산됐습니다.
- 대지주 중심 경제 구조와 빈부 격차 심화로 농민과 도시 하층 계층의 사회·경제적 불만이 증가했습니다.
- 1951년 10월 와프드당 정부가 1936년 영국·이집트 조약을 일방 폐기했으나 가시적 변화가 없자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심화됐습니다.
[주요 인물]
- 무함마드 나기브: 대중적 신망이 높았던 장군으로 쿠데타 직후 국가원수 직을 맡았습니다.
- 가말 압델 나세르: 자유장교단 핵심 조직자이며 쿠데타 이후 실권을 확대해 1954년에 국가수반이 되었습니다.
- 파루크 1세: 16세에 즉위한 국왕으로, 1952년 7월 26일 알렉산드리아 항에서 이탈리아로 망명했습니다.
[쿠데타 전개]
- 7월 22일 밤, 자유장교단은 주요 병영·방송국·통신 시설을 동시에 점령했습니다.
- 7월 23일 새벽, 쿠데타 성공 사실이 라디오를 통해 발표되었고 왕궁은 무력 충돌 없이 포위되었습니다.
- 7월 26일 파루크 1세가 퇴위하며, 군부는 그의 아들 푸아드 2세를 형식적 국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직후 조치]
- 1952년 9월 11일, 혁명지휘위원회는 토지 상한을 200 페단(약 84헥타르)으로 제한한 토지개혁법(법 178호)을 공포했습니다.
- 1953년 6월 18일,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어 나기브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 1954년 11월 14일, 나기브가 해임되고 나세르가 최고권력을 확보했습니다.
[장기적 영향]
- 1954년 10월 체결된 철군 협정으로 1956년까지 영국군이 수에즈 지대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 나세르 정권은 아스완 하이댐 건설 추진과 비동맹 운동 주도로 반식민·민족주의 노선을 확립했습니다.
- 이후 이집트 정치는 장기적인 군정·준군정 체제로 전개되었고, 중동·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공화국 체제 확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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