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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확장/조선왕조실록 100

제 19화 : 세종 시기의 국경 안정—여진·일본 외교

by 시넘사 2025.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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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일본외교

 

세종 즉위 직후 조선의 국경은 북쪽 압록·두만강 일대 여진 세력과 남해·동해 연안 왜구 활동으로 불안정했습니다. 세종은 1419년 6월 기해동정(己亥東征)으로 대마도(津島)를 정벌하여 왜구 근거지를 압박하고, 이후 외교·무역 협상으로 해상 교통로를 관리했습니다. 북방에서는 1433년 김종서에게 명해 압록강 상류에 4군을, 1437년 두만강 북안에 6진을 설치함으로써 여진 세력의 침입을 차단하고 농경지를 개간했습니다. 본문은 『세종실록』 권11·권61·권76·권99·권110의 날짜별 기사를 토대로 외교·군사 전략과 행정적 성과를 단계별로 설명합니다.

 

1418~1420년 국경 상황

세종이 1418년 8월 18일 즉위했을 때 압록강 상류 구련성(九連城)·두만강 중류 회령 일대는 여진 부락이 산재했습니다. 실록 기사(권4)는 “압록 강안 척경이 분명치 않아 경계 송사(訟事)가 빈번하다”라고 기록해 국경선 미획정 문제를 지적합니다. 남해·동해안은 1419년 이전에도 왜구 노략 사건이 해마다 보고되어, 해상 통상로와 연안 방어 체제가 취약했습니다. 세종은 재위 초기부터 윤관의 고려 동북 9성 사례를 검토하며, 국경 확정과 주민 이주 정책을 병행하는 장기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여진 대응: 4군 · 6진 개척

1433년 4월 25일 (세종 15) — 4군 설치 명
『세종실록』 권61은 “병조판서 김종서가 압록강 너머 토지의 방어가 허술함을 아뢰니, 왕이 북평(北平) 등 4군을 설치하고 수토군을 파견하게 하였다”고 전합니다. 4군은 좌측 압록강 상류에 경원·경흥, 우측 내륙에 무산·회령을 두어 전략 요충지를 확보했습니다.

1437년 10월 25일 (세종 19) — 6진 설치 명
권76에 따르면 “김종서가 두만강 북안 육진 기본 성터를 완공하고 농가 280호를 이주시켰다”는 보고가 올라와 세종이 6진을 칙명합니다. 6진은 온성·부령·무산·경성·종성·회령으로 편제되었고, 토관제(討管制)를 실시해 귀순 여진을 향부(鄕夫)로 편성했습니다.

개척 과정에서 김종서는 둔전을 조성하고 한양·함경·평안 관군을 분담 주둔시켜 단계적으로 성곽을 완성했습니다. 6년간의 대토목 공사로 압록·두만강 천리 국경선이 확정되었으며, 실록(권77)에는 “성 완성 후 여진 침입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평가되어 있습니다.


일본 대응: 기해동정과 계해약조

1419년 6월 20일 (세종 1) — 기해동정(己亥東征)
권11에는 “안동 절제사 이종무가 227척, 1만 7 285명을 거느려 대마도 절영만에 이르러 왜구 소굴을 불사르고 포로를 구출하였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원정 이후 대마도주는 사죄·인질을 보냈고, 조선은 연해 방선(防船)을 증설해 경상·전라도 연안을 순찰했습니다.

1443년 2월 11일 (세종 25) — 계해약조 체결
권99: “대마도주 종정(宗貞)이 스스로 봉진사(奉進使)가 되어 와서 조약문을 올리니, 왕이 허락하여 세견선 50척·세사미두 200석을 한도로 삼았다.” 약조는 부산포·염포·제포 3포 개항, 대마도주의 포로송환 의무, 세견세 지급을 포함했습니다. 세종은 부산포에 만호(萬戶)·수군진을 설치하고, 조운선과 분리된 입항 통제 규정을 마련해 무역·해적 단속을 병행했습니다.

실록 권110에는 1444년 “대마도 세견선이 47척으로 한도 내에서 무역을 마쳤다”는 보고가 있어, 조약이 실효성 있게 집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실록 속 결정적 장면

“두만강 북안 개간 허가”(1434년 7월 23일) — 김종서가 “여진 토호가 경작을 원하니 농기구를 공급하자” 제안, 세종이 군관 겸농 제도를 승인(권63).
“대마도 인질 파견”(1426년 9월 1일) — 세종이 “사신과 상선은 오되 인질을 동반할 것”이라고 명령해 외교 담보를 확보(권35).
“경차관 동래 파견”(1443년 12월 5일) — 계해약조 직후 세견선 운영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경차관을 부산·울산에 순행시킴(권100).


🔖 용어 설명표

  • 4군·6진 : 1433~1437년 압록·두만강 북안에 설치한 전략 거점 열 군.
  • 기해동정 : 1419년 대마도 정벌 작전으로, 이종무가 주도.
  • 계해약조 : 1443년 대마도주와 체결한 무역·해적 단속 조약.
  • 세견선 : 약조로 규정된 연간 일본 상선 허용 척수(50척).
  • 토관제 : 귀순 여진 추장에게 하급 관직을 부여해 지역 통치를 맡긴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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