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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보다,느끼다/오늘의역사

📅 11월 25일 오늘의 역사

by 시넘사 2025.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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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페의날

📌 오늘의 기념일

  •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국제)
    1999년 유엔(UN) 총회에서 공식 지정된 국제 기념일입니다. 1960년 11월 25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미라발(Mirabal) 자매** 세 명이 정부 요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기리며, 여성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목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 날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인권 침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가정 폭력, 성폭력, 인신매매 등 다양한 형태의 여성 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데 중점을 둡니다. 유엔과 각국 정부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날을 전후하여 여성 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캠페인, 교육, 심포지엄 등을 진행합니다. 특히 이 날부터 세계 인권 선언일인 12월 10일까지를 '여성 폭력 추방 16일 행동(16 Days of Activism Against Gender Violence)' 기간으로 정하여 집중적으로 활동을 펼칩니다. 이는 여성의 권리가 곧 인권이며, 폭력 없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인류 공동의 목표임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기념일입니다.
  • 수리남 독립기념일 (수리남)
    1975년 11월 25일, 남아메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수리남**이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달성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수리남은 약 300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독립에 이르기까지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과 정치적 논의를 거쳤습니다. 독립 당시 수리남의 주요 인종 그룹 간의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독립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습니다. 독립 직후 상당수의 수리남 국민들이 네덜란드 시민권을 선택하여 구 식민 본국으로 이주하는 대규모 이민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날은 수리남 국민들이 식민 지배를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고 주권을 확립한 것을 자축하는 날입니다. 수도 파라마리보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독립 기념 퍼레이드, 문화 공연, 공식 기념식 등이 성대하게 개최됩니다. 수리남의 독립은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식민주의의 종식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며,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수리남의 정체성과 미래를 다짐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 국제개발협력의 날 (대한민국)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발전과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국제 개발 협력(ODA)**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 기념일입니다. 2009년 11월 25일 대한민국이 선진 공여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승인된 날을 기념하여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한 유일한 국가로서, 이 날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 기여하고 공동 번영의 미래를 모색하는 대한민국 개발 협력의 위상을 되새기는 의미가 있습니다.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을 중심으로 이 날을 전후하여 개발 협력 주간을 운영하며, 기후 변화, 공중 보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적개발원조(ODA) 성과를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기념식과 포럼 등을 개최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글로벌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성을 지닙니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943년 11월 25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반파시스트 인민해방 평의회(ZAVNOBiH)의 첫 번째 회의가 열린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회의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 무슬림 등 세 민족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주권적인 연방 국가**로 선언되었습니다. 이 결정은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가지는 독자적인 국가적 지위와 주체성을 확립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날은 특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영토적 통합과 다민족 공동체의 평등 원칙을 재확인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선언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된 정치적 실체임을 공고히 했습니다. 비록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끔찍한 내전을 겪었지만, 이 국경일은 오늘날에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권과 다민족적 정체성의 근간을 상징하는 중요한 날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 성녀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축일 (가톨릭)
    가톨릭 교회에서 존경받는 성인 중 한 명인 **성녀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Saint Catherine of Alexandria)**의 축일입니다. 그녀는 4세기 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순교자로 전해지며, 특히 학문과 지혜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매우 뛰어난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으며, 기독교 신앙 때문에 로마 황제 막센티우스에 의해 박해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황제의 명령으로 불려온 50명의 학자들을 논쟁으로 모두 개종시켰으며, 이로 인해 고문과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녀를 처형하기 위해 사용된 바퀴는 부러졌고, 결국 참수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이름은 '카타리나 바퀴(Catherine wheel)'라는 고문 도구의 이름에도 남아 있습니다. 이 축일은 카타리나의 용기 있는 신앙과 지혜, 그리고 순교 정신을 기리며, 특히 학자, 철학자, 바퀴 관련 직업 종사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숭앙받습니다. 이 날은 신앙을 위해 고난을 견딘 성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리를 향한 헌신을 다짐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 파르페의 날 (일본)
    1950년 11월 25일, 일본의 잡지 《스타일(スタイル)》에 게재된 광고에서 **'파르페(Parfait)'**라는 프랑스식 디저트가 일본에 처음 소개된 것을 기념하여 일본의 관련 업계에서 지정한 기념일입니다. 파르페는 아이스크림, 과일, 시럽, 크림 등을 층층이 쌓아 유리잔에 담아내는 디저트로, 프랑스어로 '완벽한(Parfait)'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날은 일본에서 서양식 디저트 문화가 대중화되고, 특히 파르페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역사적 시점을 기념합니다. 파르페는 일본에서 계절 과일이나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여 매우 다양하고 화려하게 발전하여 일본만의 독특한 디저트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기념일은 파르페의 맛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파르페를 즐기는 문화를 확산시키며, 파르페를 판매하는 카페와 제과점 등에서 특별 이벤트를 통해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날입니다. 이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문화가 어떻게 수용되고 현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문화적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 역사 속 오늘

① 고대~19세기

  • 1177년 – 몽기사르 전투에서 예루살렘 왕국이 살라딘의 군대를 격파 (중동/십자군)
    1177년 11월 25일, 제3차 십자군 전쟁을 앞두고 예루살렘 왕국의 소규모 병력이 **몽기사르(Montgisard)**에서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한 무슬림 지도자 **살라딘(Saladin)**이 이끄는 대규모 군대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은 나병을 앓고 있던 16세의 **보두앵 4세(Baldwin IV)**였으며, 그는 구호 기사단장인 **오도 드 생-아망(Odo de St Amand)** 및 용감한 영주들과 함께 불과 수백 명의 기사와 수천 명의 병사만을 이끌고 진격했습니다. 살라딘은 이집트에서 십자군 영토를 급습하기 위해 약 2만 6천 명의 대군을 이끌고 진격 중이었으며, 십자군의 병력이 적다는 정보를 듣고 방심했습니다. 보두앵 4세의 군대는 기습적인 공격과 필사적인 용맹으로 살라딘의 군대를 궤멸시켰고, 살라딘 자신도 간신히 도주했습니다. 이 전투는 십자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꼽히며, 나병 환자였던 어린 왕 보두앵 4세의 군사적 능력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승리로 인해 예루살렘 왕국은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으나, 이는 살라딘의 재기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었을 뿐, 결국 10년 후 하틴 전투에서 패배하며 예루살렘을 잃게 됩니다.
  • 1783년 – 뉴욕시에서 영국군의 마지막 철수 (미국/영국)
    1783년 11월 25일,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 종전 후, 뉴욕시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이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날은 **'철수의 날(Evacuation Day)'**로 불리며, 미국이 영국 식민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독립을 확립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념일입니다. 영국군은 1776년 롱아일랜드 전투에서 승리한 후 뉴욕시를 점령하고 독립 전쟁 기간 내내 주요 군사 거점으로 사용했습니다. 파리 조약(Treaty of Paris, 1783년 9월)을 통해 미국이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은 후, 영국군은 최종적으로 뉴욕에서 퇴각했습니다. 영국군이 철수한 직후, **조지 워싱턴 장군**과 콘티넨탈 아미(Continental Army)가 의기양양하게 뉴욕시에 입성하여 대중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 날의 철수는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중요한 항구이자 도시였던 뉴욕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했음을 의미하며, 신생 독립국인 미국이 완전한 주권과 영토를 확보했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뉴욕 주민들은 이 날을 축하하며, 이후 수십 년 동안 매년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했습니다.
  • 1795년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마지막 국왕 스타니스와프 2세가 퇴위당함 (폴란드)
    1795년 11월 25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Stanisław August Poniatowski)**가 러시아의 강압적인 요구에 의해 공식적으로 퇴위했습니다. 이 퇴위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세 강대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잔여 영토를 완전히 분할하여 흡수한 **제3차 폴란드 분할(Third Partition of Poland)**의 최종 결과였습니다. 이로써 1569년에 수립되어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강력했던 국가 중 하나였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123년간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스타니스와프 국왕은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주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간섭과 군사적 압력 속에서 국가를 지키는 데 역부족이었습니다. 그의 퇴위는 폴란드 국민들에게 깊은 상실감과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이후 폴란드 독립 운동가들에게는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아야 할 숙명적인 역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날은 폴란드 민족에게 있어 비극적인 국가적 패배와 독립 투쟁의 시작을 상징하는 중요한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1844년 – 독일의 자동차 공학자 카를 벤츠 탄생 (독일)
    1844년 11월 25일은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자동차 공학자 **카를 벤츠(Karl Benz)**가 태어난 날입니다. 벤츠는 기계 공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재능을 보였으며, 1878년에 2행정 가스 기관을 발명하고 특허를 획득하는 등 내연기관 기술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886년 가솔린 내연기관을 장착한 **최초의 실용적인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을 개발하고 특허를 획득한 것입니다. 이 삼륜차는 인류의 이동 수단을 말에서 기계로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현대 자동차 산업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벤츠의 발명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사회 전체의 생활 양식과 도시 구조를 변화시키는 근대 문명의 핵심적인 동력이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회사 벤츠(Benz & Cie.)는 이후 고틀리프 다임러의 회사와 합병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인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이 날은 자동차를 대중적인 이동 수단으로 만든 선구자의 탄생을 기리는 의미를 가집니다.
  • 1863년 – 미국 남북전쟁의 미셔너리 리지 전투에서 북군이 승리 (미국)
    1863년 11월 25일,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의 주요 전투 중 하나인 **미셔너리 리지 전투(Battle of Missionary Ridge)**에서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이 이끄는 북군(Union Army)이 **브랙스턴 브래그(Braxton Bragg)** 장군의 남군(Confederate Army)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는 테네시주의 **채터누가(Chattanooga)** 지역을 둘러싼 일련의 전투 중 마지막 단계였으며, 북군은 이 승리를 통해 중요한 철도와 강이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채터누가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히 했습니다. 특히 이 전투에서 북군 병사들이 그랜트의 명령보다 더 공격적으로 미셔너리 리지의 가파른 언덕을 기어 올라 남군의 진지를 점령하는 예상치 못한 돌격을 감행하여 승리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승리는 남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으며, 미시시피 강 동부 지역에서 남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북군이 조지아주로 진격하여 전쟁을 종결시키는 데 필요한 전략적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날의 승리는 남북전쟁의 전세를 북군 쪽으로 더욱 기울게 만든 중요한 군사적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 1894년 –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결혼 (러시아)
    1894년 11월 25일,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Nicholas II)**가 독일 헤센의 공주인 **알릭스(Alix of Hesse, 이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황제 자리를 계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이 결혼식은 화려함 속에서도 급작스러운 황제의 서거와 맞물려 다소 조용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는 러시아 제국의 불안정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아내를 깊이 사랑했으나, 그의 완고한 전제 정치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정치적 무능력, 그리고 황실 내에서의 라스푸틴의 영향력 증대는 결국 러시아 국민들의 불만을 증폭시켰습니다. 이 결혼은 니콜라이 2세의 치세와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장을 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그들의 다섯 자녀는 모두 처형당하며 로마노프 왕조의 300년 역사는 종말을 고했습니다. 이 날은 러시아 제국의 황혼기에 일어난 중요한 황실 행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② 20세기 이후

  • 1936년 – 독일과 일본이 반코민테른 협정 조인 (국제/추축국)
    1936년 11월 25일,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독일 베를린에서 **반코민테른 협정(Anti-Comintern Pact)**을 공식적으로 조인했습니다. 이 협정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던 **코민테른(Comintern,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즉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항하여 상호 협력할 것을 약속한 군사 및 정치 동맹 조약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고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두 국가의 야심**을 구체화한 것이었습니다. 이 협정은 이듬해인 1937년 이탈리아가 가입하면서 **추축국(Axis Powers)** 진영의 기반이 되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동맹 세력으로 발전하는 초석을 놓았습니다. 반코민테른 협정은 국제 공산주의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체주의 국가 간의 전략적 동맹을 공고히 하며 세계 대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날의 조인은 국제 정치에서 이념적 대립이 군사 동맹으로 구체화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 1950년 – 중공군, 한국전쟁에서 제2차 공세를 전개하여 전세 역전 (한국/중국)
    1950년 11월 25일, 한국전쟁에서 유엔군(UN Forces)과 대한민국 국군이 압록강을 향해 '크리스마스 총공세'를 펼치던 시점에,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중국 인민지원군**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제2차 공세**를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공군은 이미 1차 공세(10월 말)를 통해 유엔군에게 타격을 주었으나, 2차 공세는 훨씬 더 대규모의 병력(약 30만 명)을 투입하여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 모두에서 강력하게 압박했습니다. 중공군의 대규모 병력 투입과 야간 기습 전술에 유엔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후퇴해야 했으며, 특히 서부 전선의 미 8군과 동부 전선의 미 10군단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공세로 인해 유엔군이 압록강 진격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대규모 후퇴를 감행하는 **'흥남 철수'** 등의 사건이 발생했으며, 한국전쟁의 전세는 유엔군에게 유리하던 상황에서 다시 교착 상태 또는 중공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결정적으로 역전**되었습니다. 이 날의 중공군 2차 공세는 한국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분수령이 된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 1952년 – 애거서 크리스티의 연극 《쥐덫》 초연 (영국)
    1952년 11월 25일, 영국의 추리 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연극 **《쥐덫(The Mousetrap)》**이 런던 웨스트 엔드의 앰배서더 극장(Ambassadors Theatre)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연극은 외딴 시골 저택에 모인 사람들이 눈보라 속에 고립된 채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을 다루는 전형적인 '밀실 살인' 추리극입니다. 초연 당시부터 큰 성공을 거둔 《쥐덫》은 이후 연극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74년 세인트 마틴 극장(St Martin's Theatre)으로 옮겨 계속 공연되었으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속 공연된 연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긴 기간 동안 공연되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극의 결말을 비밀로 유지하여 관객들이 추리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독특한 전통을 만들어내며 런던 웨스트 엔드의 상징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날의 초연은 세계 연극사에 길이 남을 흥행작의 탄생을 알린 사건입니다.
  • 1986년 – 이란-콘트라 사건의 불법 무기 판매 사실 폭로 (미국)
    1986년 11월 25일, 미국 법무부 장관 에드윈 미스(Edwin Meese)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이란-콘트라 사건(Iran-Contra Affair)**의 핵심 내용을 대중에게 폭로했습니다. 이 사건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발생한 중대한 정치 스캔들이었습니다. 폭로의 내용은 미국 정부가 이란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판매하고, 그 무기 판매로 얻은 수익금을 니카라과에서 활동하던 반공 게릴라 조직인 **콘트라 반군**에게 불법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의회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군사 지원을 금지하는 볼랜드 수정안(Boland Amendment)을 통과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행정부의 이러한 행동은 법률을 위반한 심각한 사안이었습니다. 이 폭로로 인해 레이건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 고문과 보좌관 등이 관련된 사실이 밝혀졌고, 미국 정치권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비록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이 사건은 행정부의 비밀 외교와 불법적인 무기 거래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며, 미국 정치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 1992년 –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해체 법안 통과 (체코/슬로바키아)
    1992년 11월 25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회가 투표를 통해 1993년 1월 1일부로 연방을 공식적으로 해체하고 **체코(Czech Republic)**와 **슬로바키아(Slovak Republic)**라는 두 개의 독립된 국가로 분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1989년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으로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후, 체코와 슬로바키아 민족 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차이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분리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슬로바키아 측의 강력한 독립 요구와 양국 지도자들(바츨라프 하벨, 블라디미르 메치아르) 간의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해체, 즉 **'벨벳 이혼(Velvet Divorce)'**이 결정되었습니다. 이 날 통과된 법안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정치적 연합을 종식시키는 최종적인 법적 조치였습니다. 연방 해체는 폭력이나 전쟁 없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으며, 냉전 종식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민족 자결주의의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유럽의 지형과 국제 정치 역학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 2002년 – 미국 국토안보부(DHS) 창설 (미국)
    2002년 11월 25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국토안보법(Homeland Security Act)**에 서명함으로써 **미국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DHS)**가 공식적으로 발족되었습니다. 이 부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유사한 대규모 테러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고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국토안보부는 연방 정부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조직 개편을 통해 창설되었으며, 이전에는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던 연방항공청(TSA), 해안경비대, 비밀경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등 20여 개 이상의 기관과 부서들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DHS의 임무는 테러 위협 예방, 국경 및 해상 보안 강화, 이민 및 세관 관리, 사이버 보안, 재난 대비 및 대응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합니다. 이 날의 창설은 미국이 테러 위협에 대한 국가적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9.11 테러 이후의 새로운 안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행정적,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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